오피니언 사설

정부 차원의 용천복구 기회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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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어제 개성에서 열린 남북당국 회담에서 불도저.시멘트 등 각종 복구 자재.장비의 지원을 요청해 왔다. 북한이 처음에 육로지원이나 병원선 파견 제의를 거부했을 때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러다 피해복구를 위한 구체적인 지원품목을 전달해 오니 그나마 바람직스럽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양측 간에는 물품의 종류와 수량.전달방법 등을 놓고 의견대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용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처절한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진정시키는 게 최우선 순위라는 점만 유념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선 정부는 보다 과감한 발상을 갖고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품목들은 웬만하면 그대로 수용해 줄 필요가 있다. 용천 참사는 민간 차원의 지원으로 대처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피해규모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들이 제공하는 담요와 천막.구급식량 등은 일시적인 대책밖에 안 된다. 북한이 장비 요청을 해온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용천 주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보다 큰 틀에서의 지원이 필수불가결하고, 이런 일은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폐허의 용천이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통일 과정사에 기록될 만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북한의 태도를 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다. 북한은 이날 회담에서도 우리의 의료진 파견이나 의약품.생필품 제공 제의는 사양했다. 자체적으로 해결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로 볼 때 이런 거절 이유에 누가 동감할 것인가. 북한당국은 이번 기회에 남측의 지원에는 어떤 '의도'나 '전술'이 들어있지 않다 점을 알아야 한다. 순수한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줄 줄 아는 자세, 그것이 바로 북한이 그렇게 원하는 통일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