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1개 사단에 최소 20억 달러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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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갈수록 월남전은 심각한 양상을 보이면서 마치 블랙홀처럼 끝없이 빨려들 듯 확전되고, 배면기지 역할을 하는 태국의 미군기지 공사는 시각을 다투며 각국의 건설업자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베트남 전쟁은 관련국들을 숨가쁘게 했고 전황은 미군에 불리하게 전개됐다.

▶1965년 이동원 외무장관(왼쪽)이 존슨 미 대통령을 만나 3월 한국군 파병에 따른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원 장관은 전장에서 소요되는 한국군의 물자는 한국산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한국군의 현대화 안건 등을 놓고 브라운 대사를 이른바 ‘전령’으로 내세운 외교적 줄다리기를 팽팽히 하고 있었다. 미 대사 브라운은 몹시 불쾌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대사를 전령처럼 여겼다는 것은 이 장관의 뜻을 백악관에 전하라는 것이겠지만 대사는 우편배달부가 아닌 것이다. 자신도 워싱턴으로부터 훈령을 받은 것이 있을 텐데 이 장관이 미 대통령의 대답을 가지고 와야 파병을 결정하겠다고 하니 우거지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협상은 해야 했고, 이 장관의 요구는 컸다. 이 장관이 타계하기 전 필자에게 회고했던 브라운 대사와 주고받은 내용은 경제외교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 자체가 미공개 문서와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록을 재구성했다.

“한국군을 월남에 파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방에서 병력을 빼야 하는데, 대사도 그 방법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것 아니오.”(이동원)

“대사로서 한국의 군사적 위험을 늘 신경 쓰며 주시하고 있습니다.”(브라운)

“그렇게 이해한다면 파월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겠어요. 그러면 군대를 어디서 빼겠소. 전장에 투입하자면 특별히 훈련된 최상의 장병들을 빼야 하고, 그래야 많은 전과를 올리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 아니겠소. 그러자면 최전방에서 2개 사단은 빼야 하지 않겠소?”

“아! 대통령 각하께서도 빼기로 결정을 보셨습니까?”
채명신 장군, 지휘권 놓고 논쟁

“빼지 않고 어디서 장병들을 선발한단 말이오. 장병을 새로 만들어서 보내나? 대통령 각하께서도 휴전선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주한 미군이 철수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파병 문제를 검토하라고 하명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데 2개 사단을 뺀다고 했을 때 그 빈틈은 뭘로 막지요? 빼면 그만큼 한반도 방위선이 허약해지지 않겠소. 우리한테는 월맹보다 더 무섭고 지독한 북한 괴뢰 집단이 있으니 말이오. 월남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다시 말하면 허약해지는 방위선을 보강해야만 우리가 군대를 보낼 수 있겠다는 얘기요.”

“1개 사단에 2억 달러 정도의 방위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2억 달러? 내 생각은 한국군 현대화요. 유능하고 용맹한 장병들을 빼게 되면 담장의 벽돌 빼듯이 빼는 것도 아니고 한국군 전체가 균형을 잃을 텐데 한국군을 현대화해 놔야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 아니오. 그런데 2억 달러? 내 생각은 1개 사단에 최소 20억 달러의 방위비는 있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 국방장관하고 협의해 봐야겠지만 아마 김성은 장관도 나하고 생각이 엇비슷할 거요.”

뒤로 나자빠질 듯이 브라운 대사는 머리를 내젓더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계속 요구사항을 짚어나갔고, 나중에는 브라운 대사가 언성을 높이면서 ‘너희(한국군)들이 언제부터 콧대가 그렇게 높아졌느냐’며 판을 깰 듯이 나오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이 장관은 능청 떨 듯이 헛기침까지 하며 근엄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군 현대화 문제는 1개 사단에 최소 2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걸 명심해 주시고, 그 다음은 파병에 따른 대우 문제인데, 우리 장병들을 파병하면 봉급과 전투수당은 당연히 미국 정부가 미군 병사와 똑같은 기준으로 줘야 해요. 전사하면 생명의 대가도 미국 정부가 규정하고 있는 기준과 동일하게 미국에서 지불해야 합니다.”

“장관님은 봉급부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한국 군인을 파병하는 것이지 한국에서 미군을 파병하는 겁니까? 한국 장병들은 한국에서 주는 수준의 봉급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대사께서는 왜 그리 답답한 말씀을 하시오. 우리가 월남에 간 이상은 미국 깃발 밑에서 싸우지 않소. 그러면 똑같이 받아야지 같은 전장에서 같은 깃발에 같은 지휘관의 지휘를 받으면서 미군은 더 받고 한국군은 덜 받아요? 그렇게 되면 인종문제도 제기될 수 있지만 뭣보다 미국이 우습게 되는 거 아니오. 미국이 뭣 때문에 월남에서 싸우는 거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 아니오. 민주주의라는 게 뭐요. 평등이잖소. 그렇다면 같은 깃발 밑에서 싸우는 사람들끼리도 평등하게 안 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어떻게 명분을 세우겠소. 남들이 웃어요. 그러니 봉급도 같고, 수당도 같고, 막사도 같고, 의복도 같고, 먹는 것도 칼로리가 같아야 해요. 미군은 하루 20달러어치 먹고 한국군은 5달러어치 먹으라고 한다면 말이 되는 소리요?”

“요리가 다르지 않습니까. 한국인들은 김치를 먹는데 어떻게 미군들하고 똑같은 칼로리를 요구합니까!”

“그건 한국에서 먹을 때 얘기고, 월남에 간 이상은 다르지요.”

이 장관은 회고하면서도 막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브라운의 대답을 듣자는 것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이 아니었던 만큼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요구더라도 백악관에 전달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 장관의 같은 깃발 아래서 같은 지휘관의 지휘를 받으며 싸운다는 말은 협상을 위한 전략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채명신 전 사령관은 인터뷰에서 증언이 확연하게 달랐다. 지휘 문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국군의 요구 사안이었다고 했다. 채 사령관의 얘기다.

“미군 사령관 스몰렌 대장하고 공군사령관 브라운 대장, 깐깐한 라슨 장군, 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지휘권 문제로 굉장히 싸웠다고요. 우리 한국군이 왜 미군 지휘 아래 들어가느냐, 그건 안 된다, 우리가 미군 지휘권 아래 있으면 미국을 위해서도 절대 좋지 않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심하게 언쟁을 했는데, 이 전쟁이 당신네들 청부전쟁이냐? 당신네들이 월남에 영토 야심이 있어서 온 거냐? 사이공을 점령하기 위해서 온 거냐? 월남공화국을 당신들의 하나의 위성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 거냐? 뭣 때문에 온 거냐 말이지. 월남 도와주러 온 거 아니냐. 공산침략을 막으려고, 자유 월남을 도와주려고 온 것 아니냐. 당신들이 전쟁의 주체냐? 당신들이 전쟁의 주체라면 월남군이고 한국군이고 다 당신들 지휘 아래 두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당신들이 전쟁의 주체는 절대 될 수 없는 것 아니냐. 만약 주체라면 당신들은 국제 정치에서 매장 당한다. 당신들이 세계에 월남전에 대해 뭐라고 변명하겠느냐? 월남전은 미국 사람의 전쟁이다, 미국의 청부전쟁이다, 그렇게 말할 거냐? 그렇다면 당신네들은 침략자가 되는 것 아니냐. 잘 생각해 봐라.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이 도우러 왔다. 내용적으로야 우리가 당신들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 왔고, 당신들이 원해서 온 거지만 형식은 월남 정부의 요청에 의해 한국군이 온 것인데, 우리가 월남군 지휘 아래 들어간다면 정치적인 명분이 있지만 당신들 지휘 아래 들어가면 당신들의 용병밖에 더 되겠느냐. 한국 국민의 자존심이 용납할 것 같으냐. 그랬더니 아주 조용해져요. 그러더니 한국군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불만을 나타내고 비판하던 라슨 장군이 제너럴 채의 말이 옳다, 나는 제너럴 채의 의견에 100% 찬동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군 지휘권은 우리가 가지고 작전을 한 겁니다. 물론 미군과 협의는 했지요.”

-장관님이 브라운 대사를 통해 백악관에 전달하려고 했던 것들이 경제적 실리와 국군 현대화 문제였는데, 그러한 내용들이 이른바 ‘브라운 각서’에 모두 포함된 겁니까?
“그렇지요. 처음에는 브라운이 아주 난처하게 나왔어요. 그러나 나는 아니지. 왜 우리 군대가 월남에 가서 싸우는데 일본 사람들이 돈을 벌게 합니까. 그 무렵 이미 일본에서 로비를 했는지 일본 제품 얘기가 언뜻언뜻 나왔어요. 그건 턱도 없는 얘기거든. 우리 병사들이 먹고 입고 쓰는 물건들, 사용하는 물자들은 전부 우리 기업들이 만든 걸로 보내겠다, 그게 바로 ‘브라운 각서’ 핵심입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한일회담 못지않게 어려운 외교를 했어요. 브라운 대사가 상당히 고자세고 깐깐한 분이에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예를 들면 국군 현대화다 했을 때 브라운 대사가 생각하는 장비 보강은 2억, 3억 달러요. 나는 언제나 최소한 ‘0’이 한두 개 더 붙거든? 그러니 브라운 생각하고 격차가 너무 커서 팽팽하게 싸우는 거지요. 그 돈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브라운이 나자빠졌지. 브라운하고 나하고 되게 싸웠습니다, 하하하.”

이런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대통령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딘가에 꼭 적어 두더라고 했다. 훗날 일기장 혹은 메모장에서 나온 기록들이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것도 중요한 국정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브라운 대사하고는 결론을 내지 못한 것 아닙니까. 백악관에서는 생각했던 대로 회신이 왔습니까?
“브라운이 보고를 못하는 거지요. 자기 얼굴도 있는데. 그래서 내가 하루는 일부러 브라운을 불러서 모욕을 줬어요. 당신은 나하고 얘기하기엔 너무 작은 졸자다. 나는 당신하고 얘기 안 하겠다. 그리고 군대 안 보낸다. 그랬더니 파병을 이미 한국정부가 결정한 걸로 판단했는지 안 보낸다는 소리엔 관심 표명이 없고 자기가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인데 자기하고 얘기 안 하면 국방장관하고 하겠다는 말이냐고 비웃듯이 그래요. 미국 대통령하고 할 거라고 그랬지요. 그랬더니 더 웃어요.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외무장관과 협상 안 한다는 거지요. 즉각 되받아서 약을 더 올렸지. 그건 과거에 그랬지, 당신들이 지금 사정이 급한데 날 안 만나? 만날지 안 만날지는 두고 보자면서 워싱턴에 있는 우리 김현철 대사한테 전보를 쳤어요. 월남파병 문제 때문에 내가 협상하러 가려고 하는데 존슨 대통령께서 만나 주실 건지 물어보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미 국무부에서 지랄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국무장관도 있고 국방장관도 있는데 대통령을 왜 만나려고 하느냐 그거지요, 하하하.”

▶1965년 10월 베트남에 파병될 한국군 맹호부대가 서울 여의도에서 환송식을 하고 있다.

존슨 대통령 직접 만나 협상

미 국무장관은 펄쩍 뛰고 대통령 비서실장도 매우 난감한 입장이었지만 결과는 만나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인터뷰하던 자신의 집무실에서 존슨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이 그때 찍은 거요’했다. 존슨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했을 정도로 미국은 ‘월남 귀신’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세계 최고의 강국도 권위를 꺾어야 할 때가 있군요. 국무장관부터 먼저 만나셨겠지요?
“아니지, 바로 화이트하우스(백악관)로 들어가 버렸어요. 국무장관이 펄쩍 뛰고 있다는데 피하는 게 좋지, 하하하. 우리 대사는 자기 입장이 있으니까 국무장관부터 먼저 만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우거지상을 쓰는데 나는 그게 아니거든. 대통령하고 약속이 돼 있으면 그 순간은 격이 다르다 그거지요. 하여간 들어갔더니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윌리엄 번디 차관보, 브라운 대사까지 언제 날아왔는지 벌써 백악관에 와서 앉아 있는 겁니다. 근데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앉아 있어 그런지 대사는 완전히 구석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말이야. 한국에서는 나한테 되게 큰소리치더니 말이지, 하하하. 물론 나도 김현철 대사를 데리고 들어갔는데 우리 대사보다도 더 쭈그리고 있어요.”

-존슨 대통령과 핵심사항은 쉽게 타결됐습니까?
“존슨 대통령이 참 온화하고 논리적으로 맞으면 수용해요. 신사지요. 박 대통령의 안부까지 묻고는 날보고 하는 얘기가, 지금 월남에서 우리가 상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미국이 그래도 믿는 친구가 한국인데 한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게 존슨 대통령의 첫 얘기예요. 그때부터 편안하게 얘기하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한마디 한마디를 아주 빈틈없이 하는 겁니다. 내가 박 대통령 앞에서는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가 언제 미국한테 형님 대접 한번 받아본 적 있느냐고 그랬지만 존슨 대통령 앞에서는 미국이 형님 아니냐고 그래 놓고 시작하는 거지요, 하하하.”<계속>

이호 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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