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철새 정치인을 소화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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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5일 개원키로 한 15대 국회가 의장도 못 뽑은채 2주가량 흘렀다.선거다,개원투쟁이다 해서 국회가 열리지 못한 것을 통산하면 거의 5개월이 되어가는데 별로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없다. 국회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저급한 화제로 전락되고 있다.
국회직 내정자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그런 인사를 강행 통과시키겠다고 나서는 여당의 자세에서 앞으로의 국회상(像)을 걱정하는사람도 없다.억지 여대(與大)가 된 현실을 원상복귀 하라는 주장을 하지만 분당(分黨)과 탈당을 밥먹듯 한 전례를 기억한다면감히 할 소리인지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런 국회의 파행상태를 3金의 고단수 정치술수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그러나 그들의 3류정치를 굳이 고등수학처럼 어렵게 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다.그들의 정치적 투쟁경력이나 정치에 대한 감각은 저급한 절차의 투쟁뿐이 었기 때문이다.민주화 투쟁이라는 이름아래 묻혀있던 과거 국회의 투쟁들 대부분도 실상은 절차의 투쟁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88년 5공청문회.언론청문회가 국민적인 관심속에 진행되고 있을 때다.변호사 출신 몇몇 의원은 일약 청문회스타로 부상했다.
한 야당중진이 발언에 나섰다.자신도 이 중요한 청문회에 출연해 각광받고 싶었던 것이다.그는 언론청문회의 한 증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언론통합을 주장했지요.』 그 증인은 대답했다.『아니오.』 갑자기 그 야당중진의 말문이 막혔다.그가 관심을 쏟은 것은 질문내용이 아니라 TV에 비칠 자신의 모습뿐이었다.그는 이발을 하고 몸단장은 잔뜩 했지만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없었다.그의 보좌관이 써준 질문서에는 증인이 『통폐합 을 주장했다』고 대답할 것을 상정하고 다음 질문이 준비돼 있었다.그런데 증인이 부인하고 나섰으니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그러나그는 그런 준비가 돼있지 않았고 임기응변으로 다음을 이어갈 능력도 없었다.잠시 침묵이 흐른후 그는 이 렇게 말했다.『그렇게했다치고,왜 그런 짓을 했소.』 기가 막힌 증인이 되레 호통쳤다.『내가 안 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간주한다는게 무슨 말이오.』 그는 몇마디 더 억지를 쓰다가 땀을 흘리며 질문을 중단해버렸다.그것이 당시 야당의 한 단면이었다.내용을 모르니 토론이될 리가 없다.그러니 국회의 회의는 토론이 아니라 『국회를 경시하는가』『국민을 우롱하는가』하는 호통으로 일관되기 일쑤였다.
반민주 악법이라도 제출되면 토론으로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법안의 상정저지,토론의 봉쇄와 같은 법안의 심의절차를 막는방법으로 대처했다.상대가 절차의 무리를 강행토록 함으로써 얼굴에 상처를 내는 투쟁방식이다.
그것이 통했던 것은 그들이 고생을 참아가며 군사정권의 억압에굴하지 않고 싸우는 거의 유일한 소수의 인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그런데 국회의 진행방법은 여전히 과거와 같은,절차를 둘러싼 투쟁뿐이다.그들에게 정치적 투쟁의 다른 방법은 생각해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년 대선(大選)을 염두에 둔 3金의 지루한 3류극을 계속 관전할 이유는 없다.어거지 여대(與大)를 만드는데 강압적 흑막이 있다면 선거수사의 공정성을 조사해봐야 되지 않겠는가.철새정치가 안된다면 당적을 옮길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 만들 수는 없는가.입에 거품을 물고 정부를 비판해서 당선된 의원이 여당으로 가버렸다면 그 연유를 선거구민들이 따져봐야 할 것이 아닌가.더군다나 검찰권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다면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공직을 감시할 체제가 필 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번 기회에 국민소환제(召還制)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이런 문제들이 현재의 잘못된 국회투쟁을 끝내는 협상의 대안으로 강구돼야 할 것이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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