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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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저도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초등산수습첩(初登山手習帖)」이란 이야기책에 실려 있는 삽화지요.』 아버지가 복사해온 그림을 보며 이자벨이 반색했다.
『이 삽화를 두고 일본인들은 「한지모노(判じ物)」라 불러요.
퀴즈라는 거예요.하지만 이 퀴즈를 푼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어요.』 『그렇지요.이 그림에 그려진 두개의 연과 달마(達磨)인형,남자 귀인,그리고 귀인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들이 각각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지는 옆에 써넣어져 있는 대사를 읽어낼 수만 있으면 어렵잖게 알 수 있을 것이고 도슈사이 샤라 쿠(東洲齋寫樂)의 수수께끼도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이자벨과 서여사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궁금해 했다.
『연의 일본말은 「다코(たこ)」….』 아까부터 생각에 잠겨온서여사가 입을 열었다.『일본말로 「다코쿠(たこく)」라 하면 「남의 나라」,즉 「타국(他國)」의 뜻이지만 「남의 나라에서 돈버는 이」의 뜻도 있지요.「다코」와 「다코쿠」는 서로 소리가 통하니까 「연」으로 「남의 나라에서 돈 버는 사람」을 빗대 표현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씀이 옳을 것 같습니다.샤라쿠가 살았던 시대의 에도(江戶)엔 그런 식으로 비슷한 소리의 낱말에다 빗대어 농담하고 야유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스티븐슨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여사 말에 동조했다.
『그럼,머슴 모습의 연이 「내가 다코라면 네놈도 다코다」라 하고 있는 것은 「내가 타국인이라면 너도 타국인이 아니냐」는 말일 수 있겠군요.』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 당신도 「다코」요.』 콕 로빈이 스티븐슨교수를 향해 농담하며 웃을 무렵,차는 하회(河回)마을에 당도했다.
사물놀이의 신명나는 소리가 귀를 덮었다.마을 어귀의 연희장(演戱場)마당에선 탈춤 공연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아,저 코예요!』 이자벨은 소리치며 카메라의 셔터를 연이어눌렀다. 『아,저 눈!』 하회 가면의 코는 유난히 높고 크다.
양반의 코,선비의 코,중의 코….모두 당당한 매부리코다.그리고할미의 눈,초랭이의 눈….이건 흡사 사탕알이다.작고 동그랗고 톡 튀어나왔다.
이런 코와 눈이 바로 샤라쿠 인물화의 특징이라며 이자벨은 흥분했다.하회탈과 샤라쿠 초상화의 얼굴이 보여주는 유사성은 「김홍도-샤라쿠 동일인설」을 뒷받침해주는 유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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