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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 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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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영화 ‘신기전’이 곧 개봉된다고 한다. 세종 시절 만든 세계 최초의 다연발 로켓 무기다. 이 비밀 병기로 조선은 강국이 됐다. 역사상 가장 신비한 무기에는 다마스쿠스 검(劍)이 빠지지 않는다. 인도산 철강을 수입해 시리아 지역에서 만든 최강의 칼이다. 로마군은 감히 사산조 페르시아를 넘보지 못했다. 유럽 십자군도 살라딘의 이슬람군에게 밀려났다. 투박하고 무거운 유럽의 칼은 가볍고 예리한 다마스쿠스 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상대방의 칼을 두 동강 내고 갑옷을 뚫었다는 기록이 도처에 남아있다.

표면에 ‘무하마드의 사다리’ 무늬가 새겨진 이 칼은 아름답다. 그러나 제조 방법은 끔찍하다. 신전에 기록된 연대기에는 ‘왕의 옷과 같은 자홍색이 날 때까지 쇠를 달군 뒤 튼튼한 노예의 근육에 찔러넣어 식힌다’고 했다. 그래야 ‘노예의 힘과 영혼이 옮겨가 단단한 칼을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전설일 뿐, 허황된 이야기다. 인도의 철강이 고갈되면서 이 칼은 지금 자취를 찾기 어려운 보물이다. 1750년 무렵, 수작업으로 전해지던 제조비법도 갑자기 끊겨 의문과 신비를 더한다.

현대 금속학계는 이 칼을 극소량의 바나듐과 몰리브덴이 포함된 철강 합금으로 분류한다. 이 불순물들이 탄소와 결합해 강도를 크게 높였다는 것이다. 표면의 아름다운 무늬도 여기서 생겨났다. 그러나 2년 전 ‘네이처’지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독일 드레스덴대학 연구팀이 이 검에서 탄소나노튜브(CNT)를 발견한 것이다. 연구팀은 “소결(燒結)과 단조(鍛造) 과정에서 불순물이 촉매로 작용해 탄소가 나노튜브 형태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최첨단 신소재가 수수께끼의 칼에도 숨어있는 셈이다.

CNT는 1991년 일본 NEC의 이지마 박사가 발견했다. 쇠보다 100배나 강하고 전도율과 수소 저장능력도 탁월한 꿈의 소재다. “차세대 반도체나 수소연료차는 CNT 없이 불가능하다.” 고려대 공대 이철진 교수의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국내에서 가장 앞선 CNT 업체도 썰렁한 분위기다. 바닥 곳곳에는 노란 테이프가 붙어있다. 앞으로 들여와야 할 진짜 핵심 장비들이 놓일 자리다. 회사 측은 “긴 안목에서 국가적 관심이 아쉽다”고 말했다. 코스닥에는 섣부른 CNT 테마주 바람이 거세지만, 갈 길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온갖 경제위기설에 짓눌린 세상…. 그럴수록 신기전·다마스쿠스 검 같은 꿈과 희망이 한결 절실해지는 느낌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