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여인극장 연극'쓸모없는 인간'통해 설화 재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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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삼국유사』의 처용이 현실지상주의자.출세주의자의 화신으로 되살아난다.
극단 여인극장(대표 강유정)은 창단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처용설화를 재조명한 연극 『쓸모없는 인간』(부제:가라리 네히어라!)을 1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은 그동안 신비스러운 존재로 여겨져온 인물.그는 용왕의 아들로 역신과 아내가 동침하는 것을보고 노래와 춤으로 역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속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주술석 해석에 의한 처용의 모습은 이번 무대에서 찾아볼 수 없다.작.연출을 맡은 박제홍은 극대화된 상상력을 도구로처용을 신라말기 헌강왕 시대의 인물 처용으로 재창조했다.
사회적 해석으로 되살린 처용은 부패와 타락으로 점철되던 헌강왕 시절 왕실의 부패에 맞서 민란을 일으키려던 토호의 아들.
철저한 현실주의자.출세주의자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그는 숲속에서 달래라는 처녀를 강간하고 아버지의 거사계획을 일러바치는 대신 벼슬자리를 얻는다.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한 그는 뇌물과 아첨으로신분 상승을 꾀하고 급기야 부친을 처형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같은 처용의 이야기는 철저히 「극중극」형식으로 꾸며진다.반면 관객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또하나의 처용을 엿보게 된다.
그의 이름은 김차용.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의 길을 좇아온 인물이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친구를 밀고하고 그 애인을 강간한 그는 재벌의 사위가 된다.법관이 돼서도 자신의 신분 상승만을 추구하던 그는 어느날 정신분열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극의 결말은 낙관적이지 않다.정신과 의사로 등장하는 옛 친구의 애인 한나영은 처용의 일화를 통해 김차용에게 과거에대한 반성을 촉구하지만 그는 여전히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인물로 묘사된다.
연출을 맡은 박씨는 『현실과 설화의 이중구조를 통해 현대에도계속되고 있는 처용의 허황된 「욕망좇기」를 그리고 싶었다』며 『극중극 형식은 순간순간 철저히 연극임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꾸며질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공장.학교등 현장공연 중심으로 연극활동을 벌여온 박씨는『골리앗 그보다 더 높이』『마지막 수업』『푸른 옷의 사람들』등을 직접 쓰고 연출한 바 있으며 이번 무대는 여인극장과의 세번째 무대다.
이번 무대엔 극한적인 상황의 연속으로 이뤄진 극 전개를 위해감정이나 상황설명이 극대화되는 과장법,판소리와 탈춤등 전통적 연극기법이 활용될 예정이다.
출연 이승철.박승태.이영숙.최효상.박진선.오상원등.오후4시30분.7시30분(첫날 낮공연 없음).(02)744-3982.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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