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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고우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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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사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인 박재동씨는 만화 가겟집 아들이었다. 그는 동네에서 이 소리 저 소리를 들으며 만화방을 하던 부모님의 아픔을 기억한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져도 만화방 탓, 아이들 싸움판이 벌어져도 애꿎은 만화 가게가 원성을 들었다. 만화 앞에는'불량''저질'이란 단어가 붙기 일쑤였다. 만화 가게가 온갖 나쁜 일의 온상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에 만화를 '제9의 예술'이라 부르는 건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렇게 좋지 않고 질도 낮은 것이 만화라면 진작 도태되어야 마땅할 터인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 독서시장에 부는 만화 바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신화고 수학이고 소설이고 한자고 다 만화로 풀어줘야 눈에 들어온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만화로 고발한 '쥐'의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의 말처럼 "만화는 연극보다 유연하고 영화보다 심오"하기 때문일까.

천덕꾸러기 만화의 제자리 찾기 뒤에는 우리 사회가 누리게 된 표현 자유의 확장이 있다. 한국 만화를 오래 옥죄어 온 검열이 느슨해지자 그림은 재미를 찾고 이야기꾼은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너덜너덜 삭제본'으로 목숨을 이어가며 천대받던 만화의 부활은 눈물겨운 구석이 있다.

25일 타계한 만화가 고우영은 50년 가까운 작품생활의 많은 시간을 심의와 싸우며 보냈다. 제 몸 같은 작품이 잘려 나가는 풍경을 그는 후일담처럼 담담하면서도 뼈 있게 적었다. "당시 군용트럭 비슷한 것에 깔려 팔 다리 몸통이 갈가리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됐다." 폭력과 선정성 등을 이유로 100여 쪽이 삭제되는 수모를 겪은 '삼국지' 얘기다. '군용트럭 비슷한 것'이란 표현에 군부독재를 묘사하는 만화의 눈이 살아 있다.

'고우영 표'만화는 꽉 막힌 우리 속을 뻥 뚫어주던 소화제였다. 그의 만화를 읽으며 웃음을 터뜨렸던 이들은 지금도 그 인간적인 폭소를 기억한다. 웃을 일 없던 세상에 웃음을 되찾아준 만화가 고우영이 남긴 '삼국지'의 명장면을 되새기며 천국에서도 그의 재기가 번뜩이기를 빈다.

"유비.관우.장비가 도원결의를 하던 엄숙한 그 순간, 제단에 바쳐진 죽은 염소가 방자하게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자 장비가 외친다. '마! 가랭이 오무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