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로 쓴 思母曲 '어머니는…' 낸 최인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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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속을 많이 썩이며 자라났다"고 말하는 소설가 최인호씨. 최씨는 "요즘 부쩍 어머니가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신동연 기자]

"어머니의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오는데 30년이 걸렸다." 소설가 최인호(崔仁浩)씨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손에 든 시거가 생으로 타 들어갔다. 한동안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향해 외롭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그는 26일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여백미디어) 라는 새 책을 냈다. 17년 전 세상을 뜬 어머니에 대한 글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한 나이가 되면서 어머니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별들의 고향' 등에서 젊은 감각을 자랑했던 그도 우리 나이로 예순이 됐다.

책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일흔이 가까이 돼 부쩍 멋을 냈다. 작가는 그것이 외로움에서 비롯됐음을 눈치챈다. 그러나 어머니가 화장을 하고 노인학교에 나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의 어머니는 열여덟살에 한 살 위였던 아버지와 결혼해 9남매를 낳아 그 중 셋을 잃고 3남3녀를 길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가 마흔여덟살에 세상을 뜬 뒤 어머니는 하숙을 쳐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여든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수년 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심하게 처진 눈꺼풀 때문에 앞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의 다섯째였던 저자는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불평을 노인성 히스테리로만 여겼다.

그는 "나는 어머니를 볼 수 없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감옥에 가둬두고, 좋은 옷 입히고 끼니마다 고기반찬을 드리는데 무슨 불평이 많은가 하고 '고려장'시키는 고문으로 서서히 죽이고 있었던 형리(刑吏)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70세쯤에 미국의 누나 집에서 보낸 편지 한 통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어머니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었다. 꽃나무와 손자들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그렴면 난성 첨은 내가 떨니는 손으로 써셔 말리나 되었는지 짐작하여 보아라. 우리 다해, 경재, 멀리 미국서 할머니가 뽀뽀한다"고 끝을 맺는다.

"20여년 전에 이 편지를 받았을 때는 무심히 읽었는데 요즘 보면 어머니의 마음이 보인다"는 작가는 "편지는 그때 왔지만 내 마음의 '기슭'에는 이제야 배달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책 안에 답장을 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느님이 쓰시는 대본에 항상 나타나는 불변의 배역인 것입니다 … 어머니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여자는 죽지만 어머니는 '창세기'이래로 한 번도 죽지 않은 영원의 모상(母像)인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소중한 것이 빛을 잃어가고 점점 중심이 흔들린다는 생각에 잡지 등에 실은 글과 새 글을 엮어 어머니에 대한 책을 내기로 마음 먹었다"며 "세상이 이처럼 혼탁하고 극렬한 대립을 보일수록 진짜 소중한 것은 어머니와 가족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로, '소도'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문에 썼듯이 내가 쓰면서 내가 울었다. 서랍을 뒤져 어머니의 편지를 찾아 표구를 했다. 지금까지 책을 수십권 냈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일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15총선 때 정치권에서 도와달라는 부탁이 많아 고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그는 "현재 '가야'에 대한 역사 소설을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언 기자<joonny@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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