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근대성 논쟁 활발-소장.중견학자들 잇단 문제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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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역사.철학.경제학.사회학 등의 소장.중견학자들이 대거 한국 사회의 「근대성」에 대한 논의에 몰두해있다.
물론 90년대 이전 근대화를 미완의 과제로 설정하고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기원을 주체적 관점에서 찾으려는 「맹아론(萌芽論)」이나 자본주의적 개발론에 입각한 「근대화론」등이 넓게 논의돼왔다. 그러나 최근 논의는 어떻게 하면 「근대」를 뛰어넘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근대에 대한 문명비판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논의와는 사뭇 다르다.마르크스주의 등과 같은 이성 중심의 근대적 사고에 기반하는한 그 위기를 제대로 인식할수 없고 이성의 독단을 넘어선 「탈근대적」전망에서만 가능하다는생각이 등장함에 따라 근대성 문제가 새롭고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이화)는 지난달 18일 「한국의 근대와근대성」을 주제로 연 심포지엄에서 식민지와 분단 등 왜곡된 근대화 과정을 거친 한국 근대성의 특수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다루었다.
한국공간환경학회(회장 최병두)도 지난달 17일 가진 「공간의근대성과 근대성의 공간」이란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근대적 도시의탈인간화된 공간구조와 근대적 생산체제가 야기한 환경문제 등 근대의 특징을 진단하고 탈근대적 전망을 탐색했다 .
철학연구회(회장 정대현)역시 지난 1일 「근대성과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주제로 한 춘계학술발표회를 열어 근대적 이성과 그 구체적 실현인 과학.국가이론.미학,그리고 그것의 한국적 적용 등 근대성과 관련해 등장하는 문제를 총괄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또 지난 7일에는 한국사회사학회(회장 신용하)와 한국역사연구회(회장 김인걸)가 공동으로 최근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비판적 검토」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가진 바 있 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상의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그 논의가 매우 다양해 가닥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그것은 근대에 대한 급진적비판에 주목하는 탈근대적 철학.사회학 이론의 입장과 탈근대적 전망을 우리에게 적용해 우리 사회를 분석하려는 시도 등의 다양한 입장들이 섞여있기 때문.
그럼에도 그 쟁점을 찾는다면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서구적 근대화론의 기계적인 적용을 넘어 우리 사회의 특수성에 기초한,근대에 대한 인식방법과 탈근대적 전망을 찾는데 따른 논쟁이다.식민지.분단 등 외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 근대성 규명이 초점이다.
또 하나는 근대에 대한 탈근대론적 인식이 갖는 양면성을 둘러싼 논란이다.우리 사회 권위주의의 해체적 효과에 주목하는 긍정적 입장과 근대적 모순마저 외면하고 신보수주의에 영합하려 한다는 비판적 입장중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란이다. 문제는 추상적 이론이나 급진적 문제제기의 논쟁만으로는 발전적인 논의 전개가 어렵고 약효도 떨어져 혼란만 가중된다는데 있다.학계 일각에서는 근대문명에 대한 포괄적 비판이라는 지금까지의 함정에서 과감히 벗어나 실증적 분석이 가능한 과 학적 틀을 동원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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