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는 없어도…패션쇼 찾아가 끝없이 셔터 눌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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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찍은 작품이라며 김승완(29·사진)씨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바로 한류스타 배용준의 지난 6월 일본 투어 활동을 담은 화보집이었다. 얼마 전 동료 둘과 함께 마련했다는 김씨의 홍대 앞 작업실에도 배용준이 주연한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스틸 사진이 걸려 있었다. 노을 진 사막을 배경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남녀의 모습이다. 그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장식했던 사진들 역시 김씨의 작품이었다.

“저를 눈여겨봐온 선배가 ‘태왕사신기’ 스틸 사진 작업을 같이하자고 불러줬어요. 제작 기간만 1년10개월이었죠. 대부분 지방이나 해외에서 촬영이 이뤄졌기 때문에 정말 고달팠어요. 하지만 그때 실력을 인정받아 배용준씨 화보집을 찍을 기회도 얻게 된 것 같아요.”

이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작업에 또래의 대기업 사원 월급 5, 6개월치를 받는다는 김씨. 월 30만원을 받고 스튜디오 보조 생활을 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1998년 2월 서울 장충고를 졸업한 김씨는 아무런 목표 없이 성적에 맞춰 인천전문대 일본어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외환위기로 청년 실업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취업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선배들을 보며 차라리 군대나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1학년 말에 입대한 김씨는 군 생활 내내 ‘과연 내가 대학을 나와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천직(天職)’과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다. 어느 날 무심코 패션잡지를 들춰보던 김씨는 스틸 사진들에 갑자기 ‘필’이 꽂혔다. 이거다 싶었다. 제대 후 무작정 혜화동에 위치한 사진 학원을 찾아가 등록했다. 그러나 김씨의 부모님은 “한국 사회에서 고졸 출신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학업부터 마치도록 했다.

하는 수 없이 복학을 했지만 ‘권총’으로 가득 찬 성적표 때문에 1학년 2학기를 재수강해야 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다. 마침내 학교 대신 학원을 택해 1년 과정을 수료했다.
“어머니께서 많이 반대하셨어요. 아들이 대학도 그만두고 사진에 미쳐 사니까 도대체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셨던 거죠. 하지만 대학 간판이나 따려고 질질 끌려다니긴 싫었어요.”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리는 듯했다. 학원 졸업 전시회에서 그의 인물 사진을 본 한 스튜디오에서 일을 제의해 왔다. 주부를 상대로 하는 잡지사의 외주 스튜디오였다. 그곳에서 사진작가 보조로 일했다. 조명이나 배경 등 촬영소품들을 챙겨주고, 가끔씩 직접 사진을 찍기도 했다. 촬영이 있는 날 밤을 새우는 것은 기본이고, 작업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자기 생활을 갖기도 힘들었지만 뭔가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한 달에 50만원을 넘기지 못하는 보조 작가 월급으로는 밥벌이가 힘들었다. 2년 만에 그 스튜디오를 나왔다. 낮에는 해장국 집에서 서빙하고, 밤에는 사진 작업을 하는 ‘반(半) 백수’ 생활이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공부했다.

“패션쇼나 행사장에 어렵사리 허락을 얻어 사진을 찍으면서 틈틈이 남들은 어떻게 찍나 두리번거리며 쳐다보곤 했어요. 4년제나 2년제 대학에서 사진 전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사이에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압박감이 컸죠. 그런데 사람들이 절대 자기 기술은 안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남들 하는 거 어깨 너머로 보고, 혼자 책이나 인터넷 찾아보고, 모르는 거 있으면 찾아가서 물어도 보며 그렇게 독학했죠.”

그러던 중 영화 스틸 사진 작업 제의를 받았다. 김유석·이순재 등이 출연한 ‘모두들, 괜찮아요?’란 영화였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돈은 얼마 받지 못했지만, 영화 촬영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됐다. 그 다음에 찍게 된 드라마가 바로 ‘태왕사신기’였다.

“제가 남들보다 순발력이 있는 편인 것 같아요. 스틸 사진을 찍을 때 유용한 장점이죠.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현장을 뛰어다니는 경험을 더 많이 하려고 해요. 학교에서 죽은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현장의 흐름과 감을 익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김씨는 사진을 전공하는 선후배들과 꾸준히 워크숍을 통해 연구한다. 그는 사진기나 모니터, 디지털 관련 업체들이 여는 세미나들을 적극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얼마나 부지런한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게 달라져요.”


● 내가 본 김승완 - 선배 사진작가 김태환씨
1999년 다음카페 사진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승완이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수많은 작가 지망생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정’이 강했고, 자신의 열정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대학을 그만두고 사진학원을 다니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항상 배우려고 하는 자세도 그의 장점이다. 거기에다 그는 ‘감각’이 있다. ‘태왕사신기’ 작업을 함께하자고 한 것도 그 전에 영화 스틸 사진 작업에서 충분히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학교에서 전문적인 공부를 했어도 사진작가는 가만히 있으면 소용없다. 움직이는 만큼 좋은 작품을 얻는다. 그는 감각과 열정, 부지런함을 두루 갖췄다.

김정수 기자·염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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