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청와대 안보팀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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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도 끝나고 대통령이 복직할 날만 기다리는 청와대 참모들의 마음이 바빠졌다. 특히 안보팀에는 이라크 파병, 북핵문제와 6자회담, 한.미동맹 추스르기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또 얼마 전 베이징 북.중 정상회담을 보면서 왠지 서먹한 상대로 느껴진 '중국 대하기' 역시 우리 외교전선에서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파병하겠다던 날은 다가오는데 정작 이 문제를 어떻게 치고 나갈지, 아니면 되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부터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 이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총선 이후 정치권의 판도 변화와 여론 동향 때문이다. 민노당은 이미 17대 국회에서 파병반대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명실상부 집권당이 된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견해가 엇갈릴 조짐이 보인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얼굴들이 지난날 당의 결정을 아무런 반발없이 따를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이라크 현지 상황이 갈수록 어지러워지는 마당에 흔들리는 국내 여론도 참모들에겐 부담스럽다.

이럴 때 청와대 안보팀이 생각해볼 점은 두가지다. 우선 지난해 9월 파병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과연 그들이 가장 무겁게 따져보았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4월총선에 미칠 부정적 파장이었다. 이제 그런 우려는 완전히 불식됐다. 오히려 대통령의 결정에 힘과 책임이 실릴 수 있는 정치판의 구도가 마련됐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둘째, 파병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이나 국회결의 이후 파병지 선정 등을 둘러싸고 정부가 보였던 엉거주춤한 태도는 이미 동맹의 신뢰를 깎아먹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파병 자체를 거둬들일 경우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는 도처에 깔려 있다. 새로운 것을 얻는 것도 국익에 도움이지만 잃어야 할 것을 적게 잃는 것 또한 국익에는 득이다.

안보팀은 탄핵에서 돌아올 대통령에게 이렇게 건의해야 한다. 파병이 총선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차단한 만큼 이젠 대통령이 집권당과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건의다. 그래야 동맹으로부터의 신뢰도 회복하고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의 권위도 선다. 집권당의 실질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도 과시하고 야당의 대통령 흠집내기 기도를 차단하는 정치적 효과도 있다.

셋째, 새로 짜이는 국회가 대북관계에서 상당히 전향적 자세를 보일 움직임과 관련해 청와대 참모들이 짚어볼 문제가 있다. 이미 남북간 국회회담을 열자는 얘기가 총선 이전부터 나와 있다.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차분하게 준비하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회만으론 안 된다. 정부가 도와야 하고 마땅히 간여해야 한다. 집권당이 나선다고 해서 대통령과 정부가 무조건 박수치며 따라갈 일은 아니다. 초당적 지지를 유도하고 남북관계 전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국회를 이끌어야 할 책임은 역시 정부에 있다. 적어도 남북관계는 그렇다.

와중에 벌써부터 통일부 장관직에 여러 정치권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의 가벼움을 확인케 하는 선거 후 살풀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그 자리는 체질적으로 보수성향을 지니면서 철저히 현실에 바탕한 정책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 맡아야 한다. 남북관계의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역사가 기억 속에 입력되지 않은 사람이 정치판의 논리에 휘둘릴 때 국회가 추진하려는 전향적 구상들마저 허망한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조차 총선 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지켜보겠다며 우리를 떠보고 있지 않은가. 한마디로 총선 이후 우리 사회가 어디 방향으로 튈는 지 우리 스스로 확신하지 못할 때 대북관계를 책임진 장관부터 바꾸려는 것은 현명치 않다.

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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