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마르케스 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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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누가 말했던가,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는 멋진 글을 쓰겠다고 벼르며 사는지도 모른다.그러나호랑이 가죽이 흔치 않은 것처럼 죽음을 극복할 만큼 좋은 작품을 내기란 쉽지 않다.
「내가 쓰려던 것을 이미 다 써놓았잖아」.평범한 사람들은 좋은 글을 읽고 나면 한숨을 내쉰다.그런데도 여전히 누군가가 새로운 방식으로 새 이야기를 쓰니 신기하다.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역시 그렇다.사건의 동기나 인물의 심리를캐지 않고 서술은 숨차게 흘러 넘친다.죽었다가 외로워서 다시 살아나는 집시 예언가,승천하는 미녀,불면증이라는 전염병 등 마치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일어날 것 같지 않은온갖 이야기들이지만 우리의 삶이나 사회와 무관치 않다.
마을을 세우고 탐험과 발명에 몰두하다 망각의 병에 걸려 밤나무에 묶이는 호세 부엔디아의 야망과 어리석음,14번 암살당할 뻔했으나 끝까지 살아남은 자유와 대장을 둘러싼 혁명,전쟁.권력의 본질,어느 순간 느닷없이 발병하는 사랑이라는 질병,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질병인 고독과 은둔.한 집안을 파멸시키는 근친상간이라는 내력도 그렇지만 환상과 야망 때문에,권력의 공허 때문에,끔찍한 역사적 사실이 은폐되는 충격 때문에 그들은고독한 삶을 보낸다.그리고 죽는 순 간,혹은 모두 가버린 다음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었는지 깨닫고 후회한다.이기심과 자만으로 가득찬 환상의 마을을 통해 작가는 대화와 사랑이메마른 우리의 땅을 얘기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지와 풍자가 가득해도 그런 얘기는 선 배들이다 썼다.무엇이 새로울까.고독의 상징인 양피지를 해독하는 순간마을의 역사가 지워진다.쓰면서 지워지는 이 독특한 방식은 역사의 허구성을 딛고 일어서는 역사의 기록이다.마르케스는 당대의 논쟁을 반영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성 을 창조해냈다.고전이란 오직 나만의 방식으로 쓰이는 모든 사람들의 얘기가 아닐까 싶다. (경희대교수) 권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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