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칼럼>韓.日 '마음의 벽' 허무는 계기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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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2002년 월드컵축구는 한.일 공동개최로 확정됐다.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FIFA)회장은 「1국개최」논리를 깨고 한.일 양국의 손을 동시에 들어줌으로써 대세에 순응했다.패자는 없고 승자만 있는 새로운 선택을 선례로 남긴 것이다.
지난달 31일 취리히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그러나 분명히 승자와 패자의 두 얼굴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아벨란제회장등 수구세력의 세불리를 실감케해준 정몽준 FIFA부회장의 일격이었다.그는 『이번 공동개최결정은 FIFA내 민주주의의 승리였으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한 척도였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권위가 무너지는 현 장의 소리였다. 사실 정몽준부회장은 최근 가장 각광받는 FIFA의 실력자로 부각돼 있다.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부친인 정주영씨가 20세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올림픽유치의 주역으로 활약했고,그 아들이 21세기를 여는 월드컵유치의 주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이들 정씨 일가가 세계체육문화에 끼친 공로는 결코 과소평가될수 없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한.일 양국은 인접국가들이 필연적으로 겪는충돌과 갈등 속에 경쟁적 관계를 유지해왔다.더욱이 경쟁으로 인한 긍정적 측면보다는 감정적 손상이 더 큰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이 한.일관계의 오늘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에 깔고 볼 때 21세기의 지평을 여는 월드컵을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개최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두나라 축구는 「절대로 져서는 안되는 상대」며 그 역사는 과거와 어우러져 한.일관계의 상징 처럼 돼왔다.한국이 네차례 월드컵본선에 진출할 때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패배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자존심은 일본이 지난 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을 때 크게 위축됐다.한국은 여러차례 일본을누르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는 참가했으나 초반탈락의 실적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한.일축구는 동반자적 입장과 끝없는 라이벌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채 21세기 세계의 축제를 맡을 권리와의무를 공유하게 됐다.
좋은 라이벌이란 자극과 경쟁의식을 심어주는 동기부여의 대상이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축구는 상호보완적이며 또 잠재력의 접목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이 잠재력의 개발과 접목이 바로 2002년 월드컵을 사상 최고.최상의 대회로 끌어갈 원동력이 될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한.일 두나라의 경제력이나 우수한 인력과 조직,위기관리능력으로 미뤄볼 때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월드컵 운영시스템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가장 중요한 문제는 스포츠이벤트를 통해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문턱에서 공동의 목표 ,공동의 번영을 위해 2인3각의 협동작업을 벌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양국이 같은 배를 탄다는 의식아래 공동개최에 따르는 난제들을하나하나 전향적으로 풀어나간다면 대회의 성공적인 운영은 물론 한.일간 마음의 벽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같은 국가차원의 시도가 일찍이 없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협조여부가 더욱 주목된다.
앞으로 6년,월드컵의 대역사는 이제부터 한.일 양국에 벅찬 과제를 하나하나 던져줄 것이다.영광은 대가없이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다.공동선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피와 땀과 인내가 요구되는 것이다.
〈KOC위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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