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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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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모든 국민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정치를 할 수는 없다. 대표를 뽑아 자기 의사를 대변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대의정치다.

이 원칙에 따르자면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은 같아야 바람직하다. 그래야 대표성있는 국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1963년 공화당은 33.5%를 득표했으면서도 두배가 넘는 67.2%의 의석을 차지했다. 신민당이 약진하던 71년을 빼고는 3공 내내 그런 식이었다. 81년엔 민정당이 35.8%를 득표하고도 47.3%의 의석을 얻었다.

야당이 이런 이득을 얻기도 한다. 16대 총선에선 39%의 표를 얻은 한나라당이 49.3%의 의석을 획득했다.

정치학에선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을 '과다 대표됐다'고 부른다. 반대의 경우를 '과소 대표'라고 한다.

대표성의 왜곡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더글러스 래이가 고안한 래이 지수(Rae index)다.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비율의 차이값을 모두 더해 산술평균을 내는 것이다. 이때 지역구만 따진다. 이 값이 두 자릿수로 올라가면 대표성이 왜곡됐다고 볼 수 있다.

래이 지수는 3공 초기 20에 육박했다. 5공 때도 10을 넘었다. 16대 총선에선 7.1이었지만 이번엔 4.78로 뚝 떨어졌다. 래이가 20개 서구 민주국가들을 분석해 얻은 평균치 3.96에 가깝다. 전체적으론 대표성의 왜곡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만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지역구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42%의 표를 모아 53.1%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11.1%포인트의 프리미엄을 얻은 셈이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37.9%를 득표해 41.2%의 의석을 따냈다. 차이는 3.3%포인트다.

지역구에서 양당의 득표율 차이는 4.1%포인트였다. 하지만 의석 비율로는 11.9%포인트나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대표성의 왜곡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민심이 엇비슷하게 갈라질 때 어느 한 쪽으로 힘을 몰아주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래야 정국불안도 막을 수 있다. 다만 지금 의석은 여당이 과반수지만 대표성으론 어느 쪽도 과반이 아니라는 얘기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