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時)가 있는 아침 ] - '취나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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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남준(1957~) '취나물국' 전문

늦은 취나물 한 움큼 뜯어다 된장국 끓였다
아흐 소태, 내뱉으려다
이런, 너 세상의 쓴 맛 아직 당당
멀었구나
입에 넣고 다시금 새겨
빈 배에 넣으니 어금니 깊이 배어나는 아련한 곰취의 향기

아, 나 살아오며 두번 열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얼마나 잘못 저질렀을까
두렵다 삶이 다하는 날, 그때는 또
무엇으로 아프게 날 치려나



시인은 지리산 자락 막걸리맛이 일품이라는 악양면 산골마을에 산다. 별빛이 초롱초롱 맑고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봄밤 내내 소소하니 곰취의 향내 또한 얼마나 깊을 것인가.

심산유곡 홀로 맑게 자랐음에도 제 몸의 향기를 쓰디쓰게 간직했음은 아름다운 일. 웃자란 취나물 된장국 끓여 소태의 국물 훌훌 들이켜는 시인의 마음이여.

한 세상 쓰게 살았으나 그 향기 먼 별의 마을까지 이를 수 있음이여.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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