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미국 역사학자 버나드 베일린 하버드大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국 민주주의의 이념적 뿌리를 연구해 미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하버드 대학의 버나드 베일린(74)명예교수가 부인 로티 베일린(MIT 경영학과 교수)과 함께 25일 방한했다.문봉장학회 후원을 받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초청으 로 내한한 그는 40여년 동안 하버드 대학에 재직하면서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이념적 바탕을 자유주의,고전적 공화주의,청교도 정신,계몽적 합리주의 및 권력에 저항하는 반권위주의 전통에서 찾는 작업을 펴왔다.그는 민주주의를 이식시킨 영국보다 미국 민주주의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적극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밝혔으며 『미국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1967)과 『서쪽으로 가는 여행자들』(1986)로 두 번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다.
[편집자註] -교수께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접근이 아니라 이념적 기원을 조명하고 있는데 이런 시도가 민주주의에 대한인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까.
『기능적 제도는 사회.문화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도가 일단 성립되면 그 자체가 생명을 지니기는 합니다만,그렇다고 자율성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제도와 그 배경이 되는 사회.문화는 서로 상호작 용하지요.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사회.문화적 기원에 주목할 때만 같은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도 다양한 권력의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나는 미국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의원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떻게 더 강조되고 있나 하는 것을 이념사적 접근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독립을 「혁명」이라 부르지 않습니다.교수께서는 미국의 독립을 「혁명」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통상 「혁명」이라 하면 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중국혁명처럼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미국혁명은 이같은 사회의 근본적 변혁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치문화」의 혁명을 의미합니다.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영국 의 민주주의제도를 도입했으면서도 반권위주의 전통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국민이 국민 자신을 위해 권력을 형성하는 정치문화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과 소수에 의한 권력의 과점,연방정부의 비대화 등으로 미국 민주주의 위기가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도 부패 등 부정적 현상이 존재합니다.그러나 독특한 점은 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아마프랑스에서는 대범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만,의회의 견제로 닉슨의 사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 대표적 인 예일 것입니다.물론 이런 견제와 균형이 상호관계를 차단해 정부와 의회,주정부와 중앙정부 사이의 갈등을 야기합니다.하지만 그것은 헌정상의 위기는 아닙니다.그렇다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결코 이상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이념이 제3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국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모델이 될 수는 없습니다.미국혁명(독립)은 독특한 환경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념적.사회적 전통이 있는 사회에 이상적 모델이 되기는 힘들겠지요.같은 민주적 제도 아래서도 사회.문화적 전통에 따라그 내용을 달리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하지만 세계에서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미국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국민은 전통적으로 권력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반면 미국 혁명 속에서 이와 다른 독특한 권력 개념을발견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물론 권력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미국과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권력은 그렇게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역사학은 예술이며 기술 권력은 사람을 부패케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결코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자를 도덕적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중요한 것은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정부를 어떻 게 조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중심제가 도입된 우리 나라에서는 권력의 집중화,부정부패를 낳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각제가 논의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미국은 혁명을 통해 권력부패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반면 영국의 내각제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총리가 내각의 수반인 동시에 다수당의 당수를 겸하고 입법과 행정을 장악하고 있어 더욱 권력이 집중되고 있습니다.또 미국은 당원에 대한 정당의 통제가매우 느슨한 반면,영국은 예비내각을 가지고 있어 당원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가능합니다.나는 미국의 대통령중심제가 오히려 한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 -귀하는 『역사는 예술일 수는 있지만,과학은 아니며 기술』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무슨 뜻입니까.
『역사에는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그러나 역사는 과학과 엄격히 구분됩니다.사회과학은 사회적 행동의 법칙과 규칙에 관심을 가집니다.
반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 내포된 균형과 일체성을 파괴합니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에 입각해서 과거를 재구성하고 그 결론을 재점검하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미국도 그러합니다만,우리 나라에서도 역사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위기가 논의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할 수 있습니까.
『역사는 한 사회가 그 과거를 기억하는 것입니다.만약 한 개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그것은 치매증입니다.
도대체 어떤 현실 속에서 사는지 감각을 상실한 정신나간 상태가 되겠지요.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억을 상실하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는 매우 중요합니다.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전체주의가 역사를 공식적으로 왜곡해왔습니다.
***과거의 상실은 전체주의 조지 오웰의 『1984년』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과거 스탈린 체제 아래서 지식인들은 극심한 역사 조작에 대해「과거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고 빈정댔습니다.역사의 상실은 곧전체주의로 이 어진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29일 오후3시 서울대 문화관 세미나(주제:『미국혁명에 반혁명이 있었는가』)와 30일 오후2시 역시 서울대 문화관 강연(연제:『미국 정체의 기원과 원칙』)을 마친 다음 이번 주말경주를 방문하고 6월2일 출국한다.
*베일린교수 약력 1922년생 1943년 하버드대 박사(역사학) 1949년 하버드대 역사학과 강사 1953년 하버드대 조교수 1961년 하버드대 교수 1967년 『미국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으로 퓰리처상 수상 1980년 미국 역사학회 회장 1986년 『서쪽으로 가는 여행자들』로 퓰리처상 수상 1993년 하버드대 명예교수 ***<주요저서> 『17세기 뉴잉글랜드 상인들』 (1955) 『미국사회 형성에서 교육』(1960) 『미국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1967) 『미국 정치의 기원』(1968) 『서쪽으로 가는 여행자들』(1986) 『혁명의 얼굴들:미국 독립투쟁에서의 인물과 주제들』(1990)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