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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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저승 넘나들며 세상과 소통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문인수, ‘쉬’ 중)

떠올리니 아름답다. 환갑이 지난 이가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 시 속의 주인공이 바로 정진규 시인이다. 이들이 술잔을 건네듯 시를 주고 받는다.

‘시인 문인수는 임종 무렵의 아버지 이야기를 시로 썼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시인 김신용이 아무래도 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김신용이 직접 지은 진솔 수의를 입으시고 이승을 뜨셨다 아무래도 나는 實物(실물) 편인가 보다’ (‘아버지의 수의’)

정진규 시인이 답례처럼 내놓은 시에 넉넉한 농담과 웃음이 배어난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시를 고집해 온 노시인에게선 그득한 풍채만큼 여유가 묻어난다. 생명 하나하나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삶의 여백을 응시할 수 있는 여유다. 이 여유는 죽음도 품는다. “죽음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편안하다. 죽음을 데리고 사는 느낌이다.”(문혜원 예심위원)

되새떼들이 떼를 지어 나는 모습을 그린 ‘되새떼들의 하늘’에서 시인은 비백(飛白)을 본다. 여백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듯한 붓질, 붓의 움직임이 빨라 먹물이 미처 묻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비백은 ‘그리지 않았지만 우러나오는 그림’이다. “새들은 발톱을 가슴에 꼭 품고 하늘을 납니다. 하늘에 상처를 내지 않고 제 가슴에 피를 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흘리는 피로 그리는 그림,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되새떼들은 그렇게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경계를 훌쩍 훌쩍 뛰어넘는 모습이 시인에겐 경외의 대상이다. 새들을 따라 시인도 경계를 넘나든다. 시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조상님들이 묻혀 계신 곳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묘지기지요. 매일 새벽 5시면 한 바퀴 천천히 돌아봅니다. 허허”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니 “어떨 때는 꼭 저쪽(저승)에 다녀온 듯한 기분도 들고요. 꽃이 피면 어머니가 다녀가신 것도 같고, 저승내도 맡지요.”라고 답한다. 그렇게 넘나들면서 시인은 “사람과 세계와 바로 통하는 시, 죽음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상태”(문태준 예심위원)를 보여준다.

어느 날 재미로 ‘오늘의 운세’를 봤단다. “칼슘 성분을 많이 섭취하고 몸을 따뜻이 할 것”이라는 말에 시인은 우유를 두 잔이나 마시고 멸치 볶음을 한 접시 비우고, 내복을 꺼내 입었다. 그러고선 시를 썼다. ‘몸 뎁혔다 왜 뎁혀야 하는지 왜 칼슘이 필요한지는 묻지 않았다 운명이니까 오늘 하루를 잘 통과했다 칙칙한 무당집 냄새가 나지 않아 좋았다 운명이 이런 것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오늘의 운세’ 중) 그 넉넉한 웃음에 운명도 고개를 숙이고 가겠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순간적 삶의 파문 노련하게 묘사

 자선단체 이사장의 이야기와 요리사 르와조의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되는 액자 소설이다. 각각의 이야기에 죽음이 등장한다. 르와조는 자신의 식당이 별 하나가 줄어든 별 두 개를 받자 충격을 받는다. 그는 엽총을 꺼내든 뒤 단 한 번도 불을 끈 적 없던 식당 간판의 전원을 내린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의 개수가 하나 줄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몇 년 전 있었잖아요. 그 사건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어요. 왜 죽었을까. 화가 나서? 그게 아닌 거 같더라고요.”

이사장 이야기에선 미란이 자살한다. 어느덧 미란의 집에 드나드는 사이가 됐던 이사장은 그녀의 자살 소식을 듣는 순간 “혹시나 방바닥에 흘러 있을지도 모를 내 머리카락이나 체액을 근심했다”고 회상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기에 앞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인간의 이기심, 또 그런 자신에 대해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습까지도 작가는 예리하게 잡아냈다.

“글을 쓸 땐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런 삶을 산다고 했을 때 이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 될 수밖에 없죠.”

이사장이 미란의 죽음에 대해 강렬히 반성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된 건 분명하죠. ‘내 탓이 아니야’라고 넘어가고 싶겠지만 아무렇지도 않을 순 없는 게 인간이니까요.” 신수정 예심위원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삶의 파문을 예민하고 노련하게 잡아낸다”고 평했다.

“취재형 소설에 있어선 한국 작가 중 최고”(김미현 예심위원)란 말을 들을 정도로 직업적 묘사도 탁월하다.

“일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얽히는 직업에 매료되는 것 같아요. 제가 관심 있는 직업 분야를 많이 다루기도 했죠. 평소 스크랩을 해 두고, 그런 분야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질문도 하고요. 제 삶에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것이지, 작품을 쓰기 위해 기자들처럼 취재하는 건 아니에요.”

그는 스스로를 ‘방콕족’이라했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지만 그가 평생 쓴 희곡은 당선작을 포함해 딱 두 편 뿐이다. “희곡은 무대에 올리기 위해 남들과 공동작업을 해야하는데, 제 사회성은 빵점에 가깝거든요.”

소설로 등단한 건 40대에 접어들어서였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빠서였다지만 작가로서 허송세월은 아니었다. 등단 10년도 안 돼 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받으며 문단과 독자의 인정을 받았다.

“그땐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더 일찍 등단했으면 골병들었을 거예요.”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하는 르와조처럼, 작가는 온 힘을 다해 글을 쓴다. 단편은 세 번까지도 새로 쓰고, 퇴고는 무수히 많이 한다. 그는 “고칠 만큼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하기 전에 다시 읽었더니 또 손 볼 게 보인다”고 말했다. 중편에 가까운 분량임에도 속도감 있게 읽힌 건 작가의 손맛 덕분일 터다.

글=이경희 기자,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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