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교육 ‘내 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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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할머니의 능력과 정보력이 아이들의 성적을 좌우(?)한다. 할아버지가 손자·손녀를 학교와 학원에 바래다주고 데려오는 건 기본. 할머니가 엄마 대신 급식당번을 하고, 어머니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손자·손녀 교육에 발 벗고 나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의 막강한 실버파워를 느껴봤다.

손녀를 영어 도사로 키우고 블로그까지

김신숙(56·경북 경주시)씨가 손녀 최은송(9·동부초3)양을 맡게 된 것은 딸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해서다. 자신이 도와줘야 딸이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김씨는 최양이 4개월이 되던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먼저 서점에 가서 영어교육 관련 책을 사서 봤다. “책에 있는 그대로 따라 했죠. 젊은 엄마들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거나 유창하게 발음해 줄 수 없어 미안하기도 했어요.” 김씨는 자신이 할머니라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책에 나와 있는 가이드라인을 착실히 따랐다.

테이프와 비디오·CD 등 매체를 활용한것도 적중했다. 결국 최양은 원어민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할머니의 발음까지 교정해 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김씨는 영어단어 카드와 영어게임 도구들도 손수 만들었다. 손녀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갱년기도 몰랐다는 그는 “영어사용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영어를 잘 모르는 나 같은 할머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은송이를 가르치면서 얻은 노하우들을 모아 블로그도 만들었어요”라고 자랑했다.

 
손자와 캐나다 유학 딸 대신 6개월간 뒷바라지

이순길(72)씨는 외손자 한정욱(15·캐나다 유학중)군을 데리고 조기 유학을 다녀왔다. 한군 엄마의 비자에 문제가 생겨 이씨가 대신 6개월간 캐나다로 떠난 것. 영어도 잘 못하는 할아버지와 손자 단 둘이 낯선 땅에서 생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경험하면서 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처음에는 한군이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 숙제할 때 이씨가 인터넷 등을 이용해 자료를 찾아주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책과 친구들이 보내준 정보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렇게 하기를 6개월, 손자의 영어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한군이 학교에 간 사이 시장을 봐서 밥을 해 먹이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단다. “국제사회에서 조화를 이루고 살려면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손자와의 동거는 조기유학을 반대했던 할아버지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손자·손녀 불러 매달 한번씩 인성교육

사람의 근본이 바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성숙하면 공부도 잘할 것이라고 믿는 이용태 삼보컴퓨터 전 회장(76)은 손자·손녀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인성교육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달에 한번, 한 시간씩만 투자해도 충분해요”라고 말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고, 그 내용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교육 방식이다. 이 회장은 지금도 매일 손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하나씩 창작하고 있다.

할아버지·할머니는 자식에게 욕심을 내는 부모와 달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할아버지·할머니를 구식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그들의 능력을 마음껏 활용하세요. 우리들은 언제나 준비돼 있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프리미엄 송보명 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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