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영토·지명 갈등에 흥분은 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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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 세기 전 일본에 우리나라가 강제 병합된 것은 민족적인 치욕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대비가 없을 때 받게 되는 혹독한 대가에 대한 교훈이었다. 독도를 다시 분쟁화하려는 일본의 시도와 미국 등 주변국들의 입장에서 한일병합의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식민지를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는 국토에 대한 기본 정보에 관심이 적었지만, 일본과 서구 열강들은 우리나라를 침탈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우리의 역사·지리·자원·언어·풍속·경제 등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포경선이 독도를 리앙쿠르암이라고 외부 세계에 알리면서 지명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다.

국제적인 생물의 명칭을 라틴어로 표기하는 학명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에서 자라는 생물조차 일본 학자들에 의해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소개된 것이 많다. 한반도의 생물 이름에도 코리아나가 아닌 일본을 뜻하는 자포니카로 불리는 것이 많다. 이는 우리가 국토와 자원을 조사하고,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소홀해 생긴 업보다.

예부터 울타리가 튼튼해야 이웃끼리 잘 지낼 수 있지만, 이웃한 나라치고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는 일본·중국·러시아와 영토·지명 등 지리적 및 역사적 현안이 있어 왔다. 동해와 독도에 대한 한·일 양국의 대립은 국민들에게 익히 알려졌다. 이 밖에 백두산과 제주도 남쪽에 있는 이어도를 두고 중국과의 영토 문제가 휴화산처럼 잠재해 있다. 러시아와는 두만강 하구에 있는 녹둔도를 두고 분쟁의 소지가 있다. 이는 역사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지리적 교양이 부족해 지리적 문맹자가 적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지금도 외부로부터 역사 왜곡과 영토·지명 문제가 제기되면 우리는 순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곤 한다. 그러나 영토와 지명에 관심이 많은 주변국들은 체계적인 조직과 치밀한 연구를 통해 국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도 현안이 부각되었을 때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정말 근본적인 대안은 없을까. 크게 네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정부 차원에서는 우리의 영토·지명·지도·국가 홍보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 청와대·외교통상부·교육과학기술부·국토해양부·국방부·국정원 등 관련 기관들의 부서별 기능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운영해야 한다.

미국의 국립지리정보국(NGA)과 같은 조직을 구성해 부처 간 상호 유기적인 정보 공유와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영토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명·지도·영토·지역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내외 전문가 집단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네트워크화하고 연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힘든 국토에 대한 연구도 첨단 과학기술 못지않게 국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셋째, 최근 제작된 국가지도집(National Atlas of Korea) 등 우리나라에 대한 홍보책자, 영토와 지명 지도 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영문 등 외국어로 출판해 국제기구와 정부기관·대학·연구소·언론기관·박물관·도서관·출판사·인터넷 포털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우리의 입장을 홍보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외의 언론매체·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재외 국민·유학생·여행자 등과 같은 시민조직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넷째, 교육현장에서는 역사와 지리교육을 체계화해 국민적인 관심과 지식을 키워야 한다. 영국과 미국이 중등학교 5대 토대 과목에 역사와 지리를 포함시켰던 것은 두 과목이 영어·수학·과학과 함께 국익에 기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우리가 다른 나라의 영토와 지명 표기에 있어서 해당국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표기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국제적인 배려도 필요하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지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