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사상 첫 금메달 … 이승엽 ‘투런’ 축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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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10면

예선과 준결승까지 계속된 드라마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마지막 순간까지 믿기 힘든 명승부를 펼쳤고, 금빛 커튼이 내려졌다.

쿠바에 3-2 짜릿한 승리

23일 우커쑹 스포츠센터 야구장에서 열린 결승전. 한국은 3-2로 앞선 채 9회 말 수비에 나섰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8회까지 역투한 왼손 선발 류현진을 계속 믿고 마운드에 올렸다.

류현진은 선두타자 엑도르 올리베라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다. 쿠바는 희생번트와 연속 볼넷을 얻어 1사 만루를 만들었다.

이때 주심 카를로스 레이 코토(푸에르토리코)가 포수 강민호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볼넷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스트라이크존이 좁았다는 항의를 하자 과민하게 반응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지나친 벌이라고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김 감독은 마운드에 정대현을 올렸고, 오른쪽 허벅지를 다친 진갑용에게 포수 마스크를 씌웠다. 쿠바 더그아웃은 역전승을 확신한 듯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태극전사들의 심장은 천천히, 그리고 강하게 뛰었다. 정대현은 율레에스키 구리엘을 상대로 침착하게 스트라이크 두 개를 꽂았다. 정대현이 볼카운트 2-0에서 바깥쪽으로 떨어뜨린 싱커를 구리엘이 잡아당겼지만, 타구는 유격수 박진만-2루수 고영민-1루수 이승엽으로 이어지는 병살타. 마지막 순간까지 맘 졸이게 했던 ‘야구 드라마’는 이렇게 끝났다.

세계 최강 쿠바와의 승부는 한순간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이승엽은 1회 초 2사 1루에서 쿠바 선발투수 노베르토 곤살레스를 상대로 좌월 선제 투런 홈런을 토해 냈다. 전날 8회 투런포에 이은 연타석 홈런. 이승엽은 주먹을 불끈 쥐고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류현진은 1회 말 미카엘 엔리케스, 7회 말 알렉시스 벨에게 각각 솔로홈런을 맞았지만 리드를 끝까지 지켜 냈다. 류현진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쿠바 타자들을 상대로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과 몸 쪽 꽉 찬 직구를 효과적으로 섞어 던졌다. 8과3분의1이닝 동안 5피안타·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류현진의 역투가 계속되자 타선도 힘을 냈다. 이용규는 7회 초 2사 1, 2루에서 쿠바 에이스 패드로 루이스 라조로부터 우월 2루타를 뽑아내며 3-1을 만들었다. 쿠바가 7회 말 3-2까지 따라붙었지만 끝까지 동점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야구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우승이 야구의 올림픽 정식 종목 재진입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야구는 세계 최고 기량을 가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불참하고, 아마 최강 쿠바가 네 차례 중 세 번이나 우승하는 독주를 한 탓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야구 변방으로 여겨진 한국이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고, 메이저리그가 올림픽 참가에 긍정적인 의견을 내면서 2016년 정식 종목 재진입 가능성을 살렸다.

한편 일본은 앞서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미국에 4-8로 졌다. 금메달 획득을 호언장담했던 일본은 한국·미국·쿠바 등과의 5경기를 모두 지면서 빈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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