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짧아도 ‘관시’로 중국통 된 구상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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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07면

8월 7일 저녁 서울 성북동 중국 대사관저에 국회의원 12명이 모였다. 국회 한중문화연구회 출범과 이를 주도한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의 초대 회장 취임을 축하하는 식사 자리였다. 이 자리는 얼핏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뜯어보면 이례적이다.

우선 중국 대사관저에서 국회 연구 단체를 위해 모임이 열린 것은 처음이란다. 거기다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축사까지 보냈다. 회원도 한나라당 박근혜·정몽준 의원,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거물들이다. 회장은 초선, 두 명의 부회장은 이해운·진영 등 재선 의원이다. 구 의원은 중국어도 짧다.

‘중국말도 못 하는 초선 의원을 거물들이 회장으로 모시고, 거기에 중국 대사관이 세게 축하하는’ 드문 일이 생긴 것이다. 어찌된 영문일까. 구 의원이 중국통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에게 “얼마나 중국 인사를 많이 아는가”라고 하자 리빈·닝푸쿠이·우다웨이·탕자쉬안·류훙차이·왕이·왕자루이·다이빙궈…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전·현직 주한 중국 대사거나 공산당 부장·부부장급 인물들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좌우하는 사람들이 친구란다.

남·북한 대사를 지낸 리빈은 2004년 서울을 떠나는 전날 당시 한나라당 부대변인이던 구 의원의 옥수동 아파트를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새웠다. 류훙차이 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은 한국에 오면 꼭 구 부대변인의 강서지구당을 찾았다. 대부분 중국 친구들과 그런 ‘관시(관계의 중국어)’라고 한다.

초선 의원답지 않은 중량급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출발점은 24년 전 이세기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때로 돌아간다. 역시 중국통이었던 이 전 의원이 중국 고위 인사를 만날 때 그는 중국 측 비서, 중·하급 관리와 문밖에서 짧은 중국어나 한국말로 친분을 다졌다. 지금까지 중국을 200여 차례 드나드는 동안 이들 친구는 당·정 고위직으로 올라갔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이들 ‘높은’ 친구들과 수시로 휴대전화 통화를 한다.

박근혜 의원과의 인연도 중국 덕이다. 부대변인 시절인 2000년 그는 중국 랴오닝성에서 농업 담당 부서기를 만났다. 부서기는 “새마을운동을 본떠 새농촌운동을 하고 있으니 박 의원을 초청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를 박 의원에게 전하면서 친분이 생겼고 뒤에 박 대표 캠프로 합류했다.

박 대표의 첫 번째 후진타오 면담을 공산당의 아주담당 부국장-류훙차이 부부장 라인을 통해 성사시켰고 올해 1월 박 의원의 중국 특사 방문 때도 실무 협상을 맡았다. 요컨대 중국은 그의 무대였다.

그는 “시킨 일에 보안을 잘 지킨 게 중국통이 된 비결”이라고 한다. 지금껏 원외 인사였던 구상찬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의원이 된 이제는 보안에 신경 쓰며 심부름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관시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한·중 관계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어야 진정한 중국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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