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유망의 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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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24일 개봉되는 『유망의생(流氓醫生)』(한국발음 『유맹의생』)은 참 희한한 영화다.
막이 오르고 30여분이 지날 때까지 참 유치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주인공 유문(양차오웨이)은 창녀촌의 슈바이처로 대학시절 사랑했던 여자를 골수암으로 잃은 상처를 갖고 있다.유문의 친구인 아초(류칭윈)는 자궁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창녀를 짝사랑한다. 유문의 박애정신에 감동해 조수로 일하는 초보의사 아소(쉬즈안)는 유문의 죽은 애인의 동생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 역시 말기 골수암 환자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센티멘털리즘의 화신들이다.
여기에 이들이 만들어 내는 웃음도 TV 프로의 개그 수준이다.그러니 30여분동안 유치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뒤로 가면서 이 유치함은 서서히 감동으로 바뀐다.
그 과정이 흥미롭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진정 소중한 것은 감상적이라고 말해지는 행위들 속에 있다는 것.
그러나 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많은 영화들이 이 소재를 동어반복해오면서 빚어 놓은 상투성을깨는 게 그것이다.
감독이 선택한 방식은 이열치열.그는 감상적인 멜로물에서 흔히봤던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키고 그 상투성을 극대화해 지금까지의영화가 얼마나 어설픈 낭만주의에 젖어 있었던가를 상기하게끔 만든다. 영화사적으로 보면 이런 발상은 지금까지 홍콩영화 저변에흐르던 낭만주의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다.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어설프게 차용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의도가 있을 것이란 심증이 간다.
이처럼 감독이 의도하는 패러디적 효과를 감지하지 못하면 이 영화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감독은 성격상 잘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형식을 뒤섞고과장과 능청과 잔잔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세트에서 촬영한 사창가 신은 뮤지컬 같은 느낌을 주고 많은 부분이 연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TV의 슬랩스틱 코미디 프로 같기도 하다.
이 혼돈과 자유 분방함의 정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요구되는작품이다.
감독 리즈이는 캐나다.영국에서 연출 공부를 했고 92년부터 홍콩 감독들이 모여 만든 영화사인 전영인제작유한공사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 홍콩의 기존 조류와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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