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어린이책] 금지 표지판으로 가득찬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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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 버스를 타지 마시오
고재은 글, 나오미양 그림, 문학동네
232쪽, 1만500원, 초등 5·6학년 이상

“하지 마라. 그러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

“내 말 들어. 다 널 위해 그러는 거야.”

기존 질서가 뒤틀어지면 세상은 금세 이상하게 변해버린다는 게 아빠의 믿음이었나 보다. 준수는 아빠의 회초리가 가르치는 세상만 보고 자랐다.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었다. 아빠 말을 따르면 언제나 칭찬을 들었으니까. 준수는 그러나, 때론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동생을 잃어버리면서 준수의 세상은 확 바뀌어 버린다. 파란 풍선을 든 동생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준수는 ‘이 버스를 절대 타지 마시오’라고 쓰인 이상한 버스를 올라타고 동생을 찾아 나선다. 하지 마라는 것은 절대 해선 안 된다는 아빠의 말을 처음으로 어긴 순간이었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버스를 타고 다른 세계로 오니 모든 게 정반대이지 않은가. 온통 금지 표지판으로 가득 찬 세상. 이곳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거스를 수 없는 힘을 가진 ‘그 누구’에 의해 지배되는 땅이다. 얼음처럼 차갑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마라’들이 동생을 얼음골로 데려갔다. 금지 표지판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 이제는 아빠 말과는 정반대로 움직여야 한다.

‘아. 너무 어려워. 어떡해야 하지?’ 그러나 방법은 있다. 금지된 일을 허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마라아니’와 마라의 지긋지긋한 목소리를 벗어날 수 있는 신비한 보자기 ‘고요부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수는 두 개의 보물을 꼭 쥐고 새로운 세계의 법칙을 하나씩 깨뜨려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행 내내 계속 피하기만 했던 ‘마라’를 향해, 그간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그 모든 금지어들을 향해 힘껏 비명을 지르게 된다. 줄곧 의지해온 마라아니와 고요부리도 놓아버린다. 얼음골로 가는 열쇠는 보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의지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현실 세계에서 얽매여있던 것들을 어린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며 극복할지를 이야기한다. 어떤 일을 하려면 길잡이가 필요하지만 그 일을 해내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제 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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