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 2세 뿌리찾기 고민 한 방에 날려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재미교포 2세들에게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키움’의 공동대표 신지연씨(맨 오른쪽)와 참가학생들 앤드루 도, 샘 지, 그레이스 유 (왼쪽부터).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 그레이스 유(한국명 유혜진·17)양은 올 여름 처음 해본 일들이 많다. 부모의 고향인 한국을 방문해 전주에서 한지공예와 다도 체험을 해봤고, 봉숭아 꽃물도 들였다. 발갛게 물든 손톱을 내보이며 “첫 눈이 내릴 때까지 꼭 남아서 첫사랑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라며 웃는 표정이 해맑다. 펜실베이니아대 생화학과에 입학 예정인 유 양이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비영리 단체인 ‘키움(www.kiuum.com)’이 마련한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 덕분이다.

‘키움’은 재미교포 1.5세대인 신지연(26) 씨를 비롯한 20대의 UCLA 동창생 세 명이 모여 꾸린 단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쉬운 재미교포 청소년들에게 한국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 스스로 뿌리를 찾도록 도와주자는 취지로 설립했다. 올해 처음으로 유 양을 포함한 18명의 재미교포 2세 학생들을 선발, 6일부터 19일까지 한국의 곳곳에서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학생들의 부담은 일절 없다. 신 씨를 비롯한 키움 소속원들이 낸 기부금과 이들이 발로 뛰어 마련한 후원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올해 1000만 원가량 적자를 봤지만 그와 친구들이 주머니를 털어 메웠다.

학생 대부분은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프로그램 진행 중에 만난 신 씨는 “성적이 우수한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에게 뽑힐 기회를 우선해서 주었다”라고 밝혔다. 한국에 올 기회가 적은 아이들을 위한 배려다.

삼일회계법인 컨설턴트인 그가 이런 일을 추진한 계기는 지난해 4월 재미교포 조승희씨의 버지니아테크 총격사건이었다. “마침 미국 출장을 갔는데 일이 터졌어요. 이민 생활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죠.”

그래서 UCLA 동기이며 같은 교포 1.5세인 친구들과 머리를 맞댔다. “상당수 교포 청소년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게 마련이잖아요.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부모들과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1월 키움을 설립해 사업에 나섰다. 어렵사리 서울시와 전주시·경주시 등의 후원을 얻었으며, 기업들의 지원도 받아냈다.

프로그램은 한국을 확실히 배울 수 있도록 짰으며, 이틀마다 시험도 쳤다.

“아이들이 곧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서 새벽 1시 넘어서까지 공부하더군요. 시험에선 ‘삼촌’을 ‘3천’으로 ‘고려’를 ‘고료’로 쓰기도 했지만,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열정이 대단하다는 게 중요하지요.”

프로그램에 참여한 샘 지 (한국명 지세진·17)군은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었던 한국을 직접 보고 느끼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회를 밝혔다. 신 씨는 올해를 발판으로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꾸려나갈 생각이다.  

전수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