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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마로니에 공원의 잠재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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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모든 것이 휘발하는 이 도시에서 변화가 미덕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공원의 시작을 안다. 그리고 그 황당한 태생을 문화로 재편했던 대학로 장소 만들기의 신화를 역시 안다. 문화로 다시 태어난 넓은 영역 내에서 이곳 마로니에 공원은 그 기원이자 거점이다. 문제는 그 이후 그에 걸맞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서울대의 문리대, 법대, 그리고 미대. 험한 세월 저항의 구심이었다. 권력은 많이 불편했으리라. 적당한 명분으로 묶어 멀리 관악산 골프장으로 내보냈다. 문리대 자리는 주택지로 팔려나갔다. 조금은 겸연쩍어 작은 공원 하나 남겼다. 바로 이곳이다. 이후 30년, 공원은 그저 그런 도시공원의 모습으로, 적당히 문화적 냄새를 풍기는 그런 공원으로 살아남았다. 사실 점점 더 나빠졌다. 어느 날 하회탈이 새겨진 분수가 생겼고 정말로 볼품없는 큰 지붕이 덮였다. 조형물·기념물들이 불쑥 들어왔다. 예총회관에는 군더더기 매점이 붙고 티켓박스, 청소년 선도용 컨테이너까지 자리 잡았다. 미술관의 새 통나무 문은 망가지는 공원과 헤어지고 싶은 미술관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학로 장소 만들기의 신화가 진행됐다. 공원 동쪽에 면해 나뉘어 있던 여섯 필지 위에 붉은 벽돌의 새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공원이 만들어진 후 4년, 1979년의 일이었다. 그중 한 필지는 김수근이 기증했다. 그는 이 정책의 제안자이자 미술관과 공연장의 건축가였다. 공연장 역시 공원 북쪽 주택지들을 다시 합했다. 지금 이름으로 아르코 예술극장, 미술관, 그리고 문화예술위원회 본관이 마로니에 공원을 온전히 에워싸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마치 옛날 문리대의 문화적 유전자를 복제하는 듯 문화지구 대학로, 동숭동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남루한 이 공원에서 그 힘과 변화는 아직 잠재력일 뿐이었다.

이제 그 잠재력을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 잠재력에 힘입어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도시 공공영역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상투적인 녹지, 잡다한 시설들을 비우는 계획만으로도 잠재력의 일부는 드러날 수 있다. 우선 계획의 과정을 모색해 보고 그 과정 자체를 근사한 축제로 만들어 보자. 누가 이곳을 누리게 될지, 여기에서 어떤 사건들이 기대되는지 여러 갈래로 상상해 보고, 김수근의 다음다음 세대들에 장소 만들기의 신화를 잇는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게 하자. 그리고 뜨겁게 논의하며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을 즐기는 일은 또 어떤가. 3년쯤 투자한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곳이 어느 공공영역보다도 다른 곳과의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남산에서 동대문, 그리고 낙산공원을 흐름으로 이어가려는 서울시의 과제를 보자. 그 흐름 끝 낙산 아래로 대학로 전체 영역이 있고 이곳 거점이 있다. 또 그 옆에는 방송통신대 캠퍼스와 여러 대학의 도심 캠퍼스들이 있다. 선한 인자들이다. 길에 묶여 가두어진 좁은 정책들을 이곳에서는 좀 더 넓고 지혜롭게 펼쳐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공공영역의 네트워크는 더 많은 사건을 부르고 사건은 예기치 않은 생성을 지속시킨다. 그 한가운데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문화도시 서울의 한 거점, 문화 공공영역의 잠재력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함께 나설 때가 되었다.

이종호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