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물새 발자국 따라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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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손택수(1970~) '물새 발자국 따라가다' 전문

모래밭 위에 무수한 화살표들,
앞으로 걸어간 것 같은데
끝없이 뒤쪽을 향하여 있다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드센 바람 속을
뒷걸음질치며 나아가는 힘, 저 힘으로

새들은 날개를 펴는가
제 몸의 시윗줄을 끌어당겨
가뜬히 지상으로 떠오르는가

따라가던 물새 발자국
끊어진 곳 쯤에서 우둑하니 파도에 잠긴다



해저무는 순천만. 개펄 위에 도요새의 발자국 몇개 찍혀 있다.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 생의 문양들. 그 곁으로 짱뚱어 한마리 몸을 비틀며 다가선다. 부드럽고 천진한 저녁햇살 수북수북 쏟아지는데 짱뚱어는 새의 발자국 곁에 주저앉아 동그랗게 몸을 움츠린다. 무슨 사연이 깊었음인가… 새의 발자국과 짱뚱어의 몸이 함께 밀물 속으로 사라지는데…. 새여 그대가 남긴 발자국 몇개, 파도에 잠겨서도 한 젊은 시인의 노래가 되었음을 아시는가.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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