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 모든 결정은 도박 망설이면 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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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박에만 순발력 있는 결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 자체가 결정의 연속이다.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간단한 결정도 있지만 진로·결혼·전직(轉職) 등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도 있다. 그 결정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후회할 때도 많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최상의 결정을 꿈꾼다.

일본에서 최근 출간된 『결정학의 법칙』은 이런 점에서 관심을 끄는 책이다. 저자 하타무라 요타로(畑村 洋太郞·63) 고가쿠인(工學院)대 교수는 도쿄(東京)대 교수를 지낸 기계공학자다. 그는 4년 전 기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겪은 숱한 실패를 토대로 쓴『실패학의 권유』로 실패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2년 전 실패학 학회가 창립됐다.

하타무라 교수는 실패학에 대해 “실패 사례를 현상·경과·원인·대처·총론·지식화의 6개 항목으로 분석해 새로운 성공을 위한 초석으로 삼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정학은 실패학의 후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결정학과 실패학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실패학이 어떤 결과를 낳은 과정을 거꾸로 추적해 들어가는 역(逆)연산이라면 결정학은 시작부터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는 순(順)연산”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 기획·행동 등은 표면에 드러나지만 결정 과정마다 어떤 갈등과 제약을 겪는지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결정 당시의 사고 맥락을 명확히 분석해 최상의 결정 방법을 찾자는 것이 결정학”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결정의 종류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예컨대 도쿄에서 오사카(大阪)로 간다고 치자. ‘갈까’‘가지 말까’와 같은 ‘단순 결정’, 간다면 자동차·열차·비행기 등 교통수단을 정하는 ‘단순 선택’, 보다 구체적으로 열차를 탈 경우 집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이용할 다양한 교통수단을 결정하는 ‘구조선택’ 등이다. ‘단순 결정’과 ‘단순 선택’은 용어가 헷갈리지만 ‘단순 선택’의 결정 구조가 더 복잡하다고 보면 된다. 결정은 기본적으로 사람·물건·돈·시간·기(氣)등 다섯 가지 요소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객관적인 요소다. 예컨대 회사를 그만 두고 독립하려고 할 때에는 함께 일할 사람, 가진 재산, 시간적 여유 등을 따져야 한다. ‘기’는 자신의 습관·경험·취향·주변 환경·분위기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평안 감사도 싫으면 그만’이란 말도 있듯이 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결정 능력은 학습·정보·훈련에 의해 크게 확대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결론뿐만 아니라 그 결정에 이르게 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전달해야 결정 능력이 커진다. 이를 위해선 조직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결정에 최대의 적은 망설임이다. 그는 “우유부단해 결정하지 못하는 동안 잃는 시간과 기회 손실은 때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며 “일본이 1990년 초부터 장기 경제불황을 겪고 있는 데는 정부가 제때 결정하지 못한 탓도 크다”고 꼬집는다. 결정 과정을 미리 분석하면 기획 내용과 제작 방식, 속도가 달라져 기획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경비가 크게 절감된다. 그렇다고 결정론이 매뉴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매뉴얼에 의존하면 조직의 사고가 경직되고 창의성을 잃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는 성공적인 결정을 위한 법칙 17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결정 과정에는 왕도가 있다. 식당을 차릴 경우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을 선택하고, 음식들을 만드는 방법을 정한 후 제작·판매 과정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목표 달성 과정을 머릿 속에 그려보는 ‘가상 연습’을 여러 차례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7가지 법칙의 첫번째로 ‘모든 결정은 도박’을 꼽은 점이다. 사실 최대한 꼼꼼히 따져 결정을 내렸는데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실패할 때가 적지 않다. 결국 운도 중요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저자의 결정이론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지나치게 결정론에 집착한 나머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예방하자는데 있다. 저자는 “성공의 필요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상황은 절대 없다. 5가지 제약 요소를 파악했다면 일단 시작하라”고 강조한다. 결정이론은 행동의 성공 확률을 최대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결정론의 목표를 새로운 문화·기술의 창조에 둔다. 일본이 지금까지의 서구 추종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문화·기술을 만들자는 것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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