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僧 현각스님 - 佛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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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푸른 눈의 선승(禪僧)' 현각 스님(右)과 프랑스의 인기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左)가 22일 파리에 있는 베르베르의 자택에서 대담을 했다.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의 주선으로 이뤄진 대담은 불교, 동양문화, 인간의 삶 등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자유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 소설 '개미' '나무'로 널리 알려진 베르베르는 불교와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며, 프랑스 전체 인구의 1%인 60만명이 불교 신자인 유럽 최대의 불교국가다.

베르베르의 자택 곳곳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모두 그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 베르베르는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한쪽 벽에는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커다란 개미 조각이 걸려 있었고, 거실 피아노 위에는 부처상이 놓여 있었다. 베르베르는 현각 스님과 기자를 맞으며 합장을 했다. 불교 신자냐고 묻자 "나는 종교가 없다. 그냥 버릇이다"고 답했다. 현각 스님이 이를 보고 "아마 당신은 전생에 불교 신자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리에 앉자 베르베르가 녹차를 권하며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냐"고 물었다. 현각 스님은 "우리가 현재에 있으므로 현실 도피가 아니다"고 답한 뒤 "다만 현재에 미련을 갖지 말고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미련을 흘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르베르가 "세상이 어지러운데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현각 스님은 "내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은 순간밖에 살지 못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희망이다"고 답했다. 현각 스님은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나름대로 해석한 기독교 사상도 인용했다. "예수가 어린아이를 본받으라고 한 것도 어린아이는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하고 완벽한 삶이다. 오로지 순간(only moment)만이 존재할 뿐이다."

현각 스님은 자신은 '이 순간에 빠져 사는'도구로 선(禪)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종교나 음악.운동 등을 도구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기와 우주가 하나가 되고, 정신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괘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현각 스님의 말을 적용하자면 베르베르의 '선'은 '상상력'이었다. 그는 상상하는 그 순간 행복을 느끼는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베르베르는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지식은 단순히 배운 것을 기억하는 것일 뿐 상상력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각 스님도 "맞는 말"이라고 화답했다.

현각 스님은 대학 강연과 프랑스 공영방송 2TV 출연 등 프랑스 일정을 마친 뒤 26일부터 닷새간 영국에 머물면서 옥스퍼드대.런던대 등에서 한국 불교를 주제로 강연하고 BBC 방송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미국 뉴저지주 출신인 현각 스님은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 원장으로 있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4월 24일자 25면 '현각스님' 기사 중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인 60만명'을 '프랑스 전체 인구의 1%인 60만명'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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