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후지쓰배 세계 선수권] 이창호, 아쉬운 준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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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준결승>
○·이창호 9단 ●·류 싱 7단

제16보

제16보(231∼248)=248에서 흑이 던졌다. 겉보기엔 승부패였으나 두 수 늘어진 패라 실제론 아무 힘도 쓸 수 없었다. 이창호 9단이니까 류싱 정도는 쉽게 이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판의 스토리는 험난했다. 흑 우세가 백 우세로, 여기서 다시 흑 우세로 반전하여 지는가 싶었으나 막판 하변에서 흑이 실족해 주는 바람에 간신히 이겼다. 전성기 시절에도 이창호 9단은 포석에서 조금 약점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한번 우세를 잡으면 결코 다시 뒤집히는 일은 없었으며 점점 더 차이를 벌여가곤 했다. 하지만 이 판에서의 이창호는 불안정했다. 이창호의 그 무언가가 파도를 만난 배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걸 딛고 기어이 결승까지 올라선 이창호 9단에게 박수를 보낸다. 불안한 대로 그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건강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신호다.

결승전에 오른 이창호는 그러나 중국의 구리 9단을 만나 불계로 패하고 말았다. 이 9단이 메이저 세계대회서 우승컵을 따낸 지도 어언 3년여. 멋진 부활을 위해 지금쯤 다시 우승을 해주기를 바랐으나 아쉽게도 기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백을 쥔 이창호는 초반의 완급 조절에 실패하면서 시종 고전했고, 구리는 살얼음 딛듯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우세를 고수해 냈다. 구리는 8강전에서 숙적 이세돌 9단을 꺾었고, 준결승에선 같은 중국의 창하오 9단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1회전부터 결승까지 모두 불계승으로 밀어붙인 구리가 중국에 13년 만에 후지쓰배를 선사한 것이다(236·239·242는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내일부터는 13회 삼성화재배 세계오픈의 명승부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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