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우리정치의 키워드를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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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정치 돌아가는 모습을 놓고 실망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아예 정치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말들도 나온다.남의당 당선자들을 빼내가는 모습도 볼썽 사납고 여야 당내에서 대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작태들도 눈살이 찌푸려지기 때문이다.
「큰정치」 「새정치」 또는 「21세기를 향한 정치」니 수사(修辭)는 요란스러운데 실제로 빚어지는 행태는 과거와 진배없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정치가 국민통합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기존의 당들은 정치적 근거를 사실상 상실한 것으로 판정되고 있다.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은 우리 정치의 틀을 부정했다.
아무도 확실한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여소야소(與小野小)」의 결과가 바로 그 증거다.4대 정당들이 얻은 지지는 모두 합쳐도 전체유권자의 50% 남짓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 선거는 결국 이미 한시대의 정치가 끝나고 있다는 징표를보였다.3金이 정치의 주도권을 놓고 여전히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 모습이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이미 그들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새로운 정치의 세대는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그런 것들이 창출될 조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국회에 새로 진출한 당선자들의 다른 면모들,金씨 정치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야권 내부의 움직임도 그런 조짐의 작은 일단들이다.
문제는 현재의 정치권이 국민과의 괴리를 극복할 대안을 찾아낼수 있으며,과연 국민적 통합을 가져오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대권문제라는 것도 그렇다.여당은 통치권의 누수(漏水)현상이 우려된다는 이유로,야당은 당의 체계 가 흐트러진다는 이유로 차기 대통령후보에 대한 조기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고쐐기를 박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논의라는 것은 내년도의 대통령선거를겨냥해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국민을 향해 인기를 시험하면 될뿐이다.
거기에 무슨 누수현상이니 ,당의 권위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붙을 필요가 없다.그런데도 그런 기회는 봉쇄된다.
왜냐하면 정치가 국민을 향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판정된 틀 속에서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적 통합의 지표를 갖는 일이다.
우리도 지난날엔 통합의 요인이 있었다.바로 안보와 안정이다.
전쟁의 위협,체제위기들은 모든 내부 문제를 은폐하거나 감춰버리는 강제적 통합의 변수들이었다.지난 총선기간에 판문점 북한 무장병력 투입사건이 끼친 영향은 바로 그런 변수의 잔재와 같은 것이다.그러나 이제 그 효과도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다.그런 억압적 요인으로 지속적인 통합을 얻어낼 수 없다는 점은 너무도 분명해지고 있다.
이미 세계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세계시민으로 활동하고 세계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변화하는 세대들에 대해,우리 정치가 개발독재시절의 규제와 찢어진 분단의 이념,그리고지역주의적 감성을 바탕으로 통합을 호소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미래에 대한 선취(先取)능력과 선도(先導)능력의 결여일 것이다.이웃 일본에서는 그들의 미래와 새로운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오자와(小澤)개조계획」이니,「하시모토(橋本) 비전」이니 하는 것들이 제시되 고 있다.미국에서도 「성난 유권자」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노력들이「신도덕주의」나 「자율통치」와 같은 언어로 나타나고 있다.그런데도 우리는 金씨들의 야합과 밀실낙점을 둘러싼 눈치보기 줄타기가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로 꼽혀서는 곤란하다.
우리도 정치의 새로운 키워드를 찾자.그리고 그것을 향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가는 지도자를 찾아내자.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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