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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을 넘어온 편지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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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얼마 전 청송교도소의 한 재소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엔 ‘말린 꽃잎’이 하나 붙어 있었다. 교도소 안에서 하루 30분 주어진 운동시간에 담장 밑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주워다 곱게 말려 이를 편지지에 붙여 보낸 것이다. 편지를 보낸 이는 서른두 살 난 남자였다. 그 말린 꽃잎 하나가 내 마음을 울렸다.  

# 그 재소자가 보낸 편지의 내용인즉 내가 펴낸 책 중 『인문의 숲에서…1, 2』를 받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그만 가게를 꾸리다가 자금난에 허덕여 빚더미에 올라앉고 마침내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된 그는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교도소 안에서 돌아다니는 책이라곤 무협지나 만화책밖에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와중에 단 10분을 면회하기 위해 먼 길 마다 않고 오시는 홀로 된 늙은 아버지에게 책 부쳐 달라고 할 염치도 없기에 망설임 끝에 내게 부탁의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나는 말린 꽃잎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내 책을 부쳤다.

# 지난 4월 5일자 본란의 ‘교도소 담장을 넘어온 편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소개했듯이 안양교도소의 한 재소자는 “이곳(교도소)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 동안 좋은 책을 접해 훗날 사회로 복귀했을 때 후회 없이 살아가고 싶다”는 고백과 다짐을 했다. 아울러 내 책을 한 권 보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어 지체 없이 책을 챙겨 부쳤다. 이 칼럼의 반향인지 그 후 부쩍 교도소 담장을 넘어온 편지들을 자주 접한다. 대개 책을 부쳐 달라는 내용의 편지들이다. 덕분에 그들에게 책을 부치는 것이 요즘 일과 중 하나가 됐다. 처음 책을 부쳤던 그 재소자는 8월 중에 출소한다. 얼마 전 그에게 새로 펴낸 책을 부쳤다. 그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청주여자교도소에 있다가 여주교도소로 이감된 또 다른 재소자는 거의 매주 열 장씩이나 되는 긴 편지를 보내온다. 거기엔 진한 ‘삶의 몸부림’이 너무나 절절하게 담겨 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그녀를 교도소 담장 안에 갇히게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이제는 스스로 “다시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죄책감에 스스로를 옥죄기만 하던 사람이 다시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되살아나도록 응원하기 위해 난 새 책이 인쇄되자마자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그 첫째 권을 그녀에게 부쳤다.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스스로를 추슬러 제대로 다시 살고 싶어지는 법이다.

# 세상이 온통 올림픽의 열기로 가득한 요즘, 교도소 담장 안은 과연 어떨까? 물론 그들도 올림픽 실황을 접하기야 하겠지만 오히려 요즘 같은 때엔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소외된 느낌이 더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8·15 특사까지 있었지만 정작 본인들은 비켜간 채 여전히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억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삶에도 패자부활전은 남아있다. 그들이 삶의 패자부활전에서 이길 수 있도록 책을 보내자. 책 한 권이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다. 삶을 추슬러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책 속에 있다. 그 책 한 권이 그들을 제대로 다시 살고 싶게 만드는 열렬한 삶의 응원이 된다.

# 어제가 광복절이었다. 하지만 삶의 광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손에 쥐어지는 운명 같은 책 한 권이다. 올림픽에 나선 선수들에게 힘찬 박수와 열띤 응원을 보내듯 삶의 패자부활전을 펼치는 담장 안에 갇힌 그들에게 책을 보내 응원하자! 파이팅!!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