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 뽑아만 놓으면 줄줄이 구속 … 임실군민 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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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의 살림살이 책임지는 머슴 노릇 잘헌다고 해서 찍어 주고 열심히 세금 냈더니… 정말 감쪽같이 속았어.” “주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 것을 걱정할 정도로 힘들게 사는데, 지그들은 시커먼 돈 받아 자기 주머니만 챙기려다 탈 난 것이제.”

14일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 버스터미널. 선풍기 앞 의자에 앉아 있던 촌로들은 ‘김진억(68) 군수가 군정 복귀 한 달 만에 또다시 뇌물 수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에 혀를 끌끌 찼다.

김 군수는 지난해 7월 건설업자에게 오수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주는 대가로 ‘2억원을 지급한다’는 뇌물각서를 받았다가 징역 5년형과 함께 법정 구속됐었다. 다행히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이 결정 나 지난달 군수실로 복귀했다.

그러나 13일 김 군수에게 구속영장이 또 청구됐다. 2006년 임실군이 발주한 임실읍·신덕 지역 상수도 확장공사와 관련해 수의계약을 주는 대가로 비서실장 김모(41·구속)씨가 건설업자에게서 받은 7000만원 중 5000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다.

터미널 옆에서 만난 30대 택시기사는 “서울·전주 나가 사는 친구들이 ‘창피해 고향을 옮겨야겠다’는 전화도 걸려 온다”고 전했다. 그는 “무조건 당선되고 보자는 생각에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아 선거비로 쓰고, 그 때문에 이권을 노리는 사업자들의 덫에 걸려 결국 도중 하차하는 것”이라는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현지에선 ‘군수 선거에 20억원 쓰면 낙선, 30억원 뿌리면 당선’이라는 말도 돈다.

군청 주변에선 삼삼오오 모여 군정의 앞날을 걱정하는 직원이 많았다. 한 공무원은 “민선 군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니 주민들에게 낯을 들 수 없다”며 “단체장 공백으로 5년째 첫 삽조차 뜨지 못하는 치즈 클러스터를 비롯한 현안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선 군수 줄줄이 구속=임실군에서는 김 군수를 포함해 민선 군수 모두가 전원 구속되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1995년 민선 첫 군수였던 이형로(72)씨는 연임 시절인 2000년 12월 쓰레기매립장 부지 조성공사를 하면서 업체 선정 부탁을 받고 일부 서류를 임의로 꾸며 준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로 구속됐다. 2001년 4월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이철규(68)씨는 민선 3기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2년 만에 구속됐다. 2003년 8월 군수 관사에서 사무관 승진 인사 청탁과 함께 직원들에게서 90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실=장대석 기자

◇군수=‘지방의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이 때문에 뇌물의 유혹에 끊임없이 노출돼 있다. 인구 3만여 명인 임실군의 경우 공무원 580여 명의 승진과 보직 결정, 징계권을 갖고 있다. 일반회계 2500여억원, 특별회계 160여억원의 집행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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