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뒤늦게 러시아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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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전쟁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미국 등 서방이 뒤늦게 ‘그루지야 구하기’에 나섰다. 군 수송기를 동원해 그루지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시작하는가 하면 러시아에 대한 외교 압박의 수위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오히려 “그루지야와 러시아 중 양자택일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뒷북 치는 서방=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3일 “러시아는 반드시 그루지야의 영토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며 러시아의 군사행동 전면 종식과 즉각 철군을 촉구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그루지야 정부 편에 서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그루지야 국민에 대한 대대적인 인도적 지원을 위해 미 해군과 공군을 동원하겠다”며 “현재 지원 물자를 실은 미국의 C-17 수송기가 (현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그루지야를 방문해 미국의 굳건한 지원 의사를 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데이비드 밀리반드 외무장관은 이날 “러시아가 그루지야 침공으로 G8(주요 8개국) 회의와 중요 정책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등 국제정치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영국은 또 15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해상에서 러시아와 함께 실시할 예정이던 해군 합동 군사훈련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목소리 높이는 러시아=러시아는 즉각 불만을 표시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리는 이것이 ‘위험한 게임’이며 미국의 지원이 모험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한 차례 이상 경고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그루지야 지도부를 계속 지지할지, 아니면 국제문제에 관해 러시아와 동반자 관계를 지속할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군이 14일 그루지야에서 철군을 시작했다고 러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그루지야 중부 고리시에 대한 통제권을 그루지야 경찰에 넘긴다고 밝혔다. 통신은 “러시아군이 이날 오전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으며 통제권 인계는 15일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 전쟁이 터진 8일부터 그루지야 내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해안에 정박하면서 해상경계에 나섰던 러시아 흑해 함대 소속 4척의 함정도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령 세바스토폴 기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쇼타 우티아슈빌리 그루지야 대변인은 “러시아가 철군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마음을 바꿔 고리시와 포티시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양측이 다시 교전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고리시 인근에서 적어도 5차례 폭발음이 들렸고 박격포 소리와 유사했다고 보도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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