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미국.일본성명'은 對中 봉쇄가 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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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최근 9일간의 세계 순방 외교를 마쳤다.이번 정상외교는 11월 대선을 겨냥한 선거용이라는 지적이 많다.특히 러시아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의 회담은 6월 대선을 앞둔 옐친에게도 큰 힘을 모아주는 등 양 정상은 외교를 통해 훌륭한 선거운동 효과를 거뒀다.
같은 시기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을 중동에 파견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을 중재토록 한 것 또한 이스라엘 선거를 염두에 둔 조치다.다음달 총선을 치르는 이스라엘에서 시몬 페레스가 재집권하기 위해서는 중동평화가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련의 외교정책이 다분히 내정(內政)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해도 클린턴은 이번 순방에서 과소 평가하기 어려운 큰성공 한가지를 거뒀다.태평양 지역에서 일본과 새로운 군사적 협력관계를 구축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클린턴은 사상 처음으로 일본으로부터 평화시에 미군을 지원하고전시에는 미국과 협조하겠다는 동의를 얻어냈다.보기에 따라서 외교적 수사로 보일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는 아시아 지역,특히 중국에 일본이 태평양지역에서 미국과 군사적 행동을 함께 하기로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일본의 군사적 능력을 깊이 체험한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군사력이 적절히 통제되는 것을 원했다.그후 50년동안 일본은 헌법 조항을 통해 군사적인 침묵을 지켜왔다.이제 침묵의 시대는 지났다.
일본은 강하다.중국이 일어서고 있는 지금 최강국 미국은 피로하다.한국과 베트남에서 홀로 싸워온 미국은 피로에 지쳐있다.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이제 세계 경찰의 짐을 혼자 지기 어렵다.설혹 물리적 능력은 있더라도 심리적으로 지쳐있다.아시아 지역 분쟁시 일본이 뒷짐만 지고 있을 경우 앞으로 미국의 어느대통령도 그 문제에 홀로 개입하는데 국내의 동의 를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18일 발표된 미.일 공동성명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잠재적으로 중국의 위협을 겨냥,일본의 적극적 군사행동을 규정한이 역사적 선언에 대해 중국이 즉각 반발하고 있는 것도 성명의중요성 때문이다.
공동 성명을 계기로 일본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도 중시해야 한다.클린턴 등장 이후 3년간 일본은 경제적 침략을 일삼는 적으로 여겨져왔다.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드디어 일본이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잠재적 적이 있다면그것은 중국이다.클린턴은 지난달 중국이 대만을 직접 무력 위협한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번 공동성명이 단순한 선거용 전략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우리가 할 일은 클린턴이 지속적으로 이같은 정책을 유지해 나가는 지를 지켜보는 것이다.이 정책이 꾸준히 유지된다면 역사는 이를 클린턴의 가장 큰 업적으로기록할 것이다.
새로운 대(對)일본 정책은 우리의 적과 동지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이로써 미국은 태평양 정책에서 일본을 궁극적인 동반자로 규정하게 됐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위협인 중국 봉쇄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이다.
[정리=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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