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홈뉴패밀리>26.전업주부 권리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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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업주부 박해영(45.성남시분당구이매동)씨는 6개월전 지금 동네로 이사오면서 남편과 함께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의 공동소유주가 됐다.
『돈을 벌어온 사람은 물론 남편이지만 재산을 모은데는 알뜰살뜰 살림해온 제 공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어요.처음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무슨 딴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 하던 남편도 제 설명에 흔쾌히 응해 주 었지요.』 아파트의 공동소유주가 된 후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라는자기비하가 「당당한 경제활동으로 내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바뀌었다는 朴씨는 『주부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권할만하다』고 말한다.
얼마전까지 직장에 다니다 최근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주부 고정희(32.서울중구신당동)씨는 재산 증식을 위한 몇개의 통장과 자동차를 자신의 이름으로 해놓고 있다.
『아파트는 남편이 결혼전부터 갖고 있던 것이어서 그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같구요.그 대신 우리집의 가장 큰 동산(動産)인 차와 통장은 상징적으로라도 제 명의로 하고 싶었어요.』 작게는 내 통장,내 자동차 갖기에서부터 집안의 재산을 공동소유하는 것까지 「전업주부의 권리 찾기」가 한창이다.가족공동체를 위해 뒤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전통적 주부 상(像)이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등 개인단위의 경제주체화 시대를 맞아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
「주머니돈이 쌈지돈」이라는 막연한 의식을 갖고 있던 대다수의여성들이 금융실명제로 동전 한푼까지 자기 주인을 찾아가는 것을보고 「재산없는 전업주부=경제적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실감했으리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권리 찾기는 집안 재산은 당연히 가장(家長)의 이름으로 돼야 한다는 오랜 관습에 부닥쳐 저항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의사 남편을 둔 주부 유태현(34.서울양천구목동)씨는 『남편후배중 부인이 사온 35평형 아파트를 자존심 때문이라며 굳이 부인 이름으로 하지 않고 자기명의로 하는 사람도 보았다』고 전해준다.이럴 때 여성이 심각한 부부싸움을 각오하 고 자기 주장을 펴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가사노동을 국민총생산(GNP)에포함시키려는 등 전업주부를 경제주체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세제(稅制)등 제도 자체가 변화하는 의식을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학자 문소정(文昭丁.부산대 강사)씨는 『직업이 없는 주부가 재산을 가지려할 때 이를 남편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보는것이 현행 우리나라 세제의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여러차례의 개정을 거쳐 전업주부라도 「5천만원+(결혼연수×5백만원)」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근본적으로부부간의 재산이동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물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그의 주장.언제라도 남남이 될 수 있다는 전제 를 깔고 있는 서구식 부부별산제보다는 우리 고유의 가족공동체 정신을 살리면서도 전업주부의 경제적 권리를 인정해줄 수 있는 재산소유문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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