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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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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한때 실험 대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하지 않습니까?” 그는 이 질문을 포기해야 했다. 많은 사람이 갑자기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질문을 던졌으나 주관적인 복지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고안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도 실험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는가.

인간은 고릴라·침팬지·원숭이·오랑우탄을 포함하는 모든 영장류 중에서 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출생 직후의 첫 호흡도 울음으로 시작한다. 이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아직 눈물샘이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눈물은 생후 4일이 되면 조금 나오기 시작하고 6개월이 되면 제대로 나온다. 그 이후로는 엄청나게 울어댄다. 한 살 된 아기는 보통 한 달에 65차례 운다.

성인이 되면 우리는 잘 울지 못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회적 지위, 체면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음은 감정이 격해지면 자연히 일어나는 신체 반응이고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 감정적 눈물에는 ‘카테콜라민’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이 몸에 쌓이면 소화기 질환, 심근경색, 동맥경화가 생기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

1997년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의 일이다. 영국민 대부분이 TV로 장례식을 지켜보며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이 사건 이후 한동안 영국의 심리상담소를 찾는 환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실컷 울고 나면 신경이 안정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 효과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다이애나 이펙트’ ‘다이애나 신드롬’으로 불렀다.

베이징 올림픽 첫날인 9일 유도 60㎏급에서 우승한 최민호 선수는 시상대에 올라서까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동안 겪었던 서러움이 벅찬 기쁨과 뒤섞였을 것이다. 11일 유도 73㎏급 결승전에서 패한 왕기춘 선수는 퇴장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갈비뼈 부상의 아쉬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회한일 터이다. 메달을 땄든, 아쉽게 놓쳤든,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들의 눈물은 더욱 그렇다.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안으로 삼키며 외길을 걸어왔을 것인가. 선수들이여, 이제는 참지 말고 펑펑 울어도 좋지 않겠는가. 우리의 마음까지 따라서 정화되도록….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