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 딸 것 같으면 DMB폰 들고 화장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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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1일 서울 중구의 한 대기업 사무실. 오전 11시가 되자 남모(24·여)씨가 휴대전화를 들고 일어섰다. 남씨는 화장실 빈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자마자 휴대전화의 디지털 멀티미디어 이동방송(DMB)을 켰다. 박태환 선수의 200m 자유형 준결승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박 선수가 2등으로 터치패드를 건드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함성이 나왔다. 순간, 화장실의 다른 칸에서도 동시에 함성이 터져나왔다. 박씨처럼 화장실에서 몰래 올림픽 경기를 보던 동료였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베이징 올림픽 ‘생중계 몰래 보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베이징과 한국의 시차가 한 시간밖에 나지 않아 대부분의 경기가 업무 중인 낮 시간대에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승우(32)씨는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의 접속이 차단된 경우도 있어서 동료끼리 ‘몰래 보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요즘 화두”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올림픽 몰래 보자’ 열풍=중소기업에 다니는 송모(45)씨는 요즘 거래처 방문길이 즐겁다. 이동 중에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올림픽 경기를 시청할 수 있어서다. 송씨는 “폭염으로 여기저기 이동하는 게 짜증 났는데 요즘에는 회사에 있는 것보다 돌아다니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오후 2시쯤이면 일이 다 끝나지만 왕기춘 선수의 유도경기를 보기 위해 회사에 늦게 들어갈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건축 설계업에 종사하는 김진호(29)씨는 컴퓨터에 온라인 개인방송 ‘아프리카’를 켜두고 일을 한다. 올림픽 경기를 몰래 시청하기 위해서다. 경기를 보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김씨는 다른 프로그램 창을 켜 둔다. 김씨는 “업무 중 올림픽 경기를 보면 상사가 눈치를 줘서 ‘온라인 시청’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쯤 ‘아프리카’에는 김씨처럼 올림픽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했다. 올림픽 생중계를 위해 개설된 방도 120여 개나 됐다. 촛불로 뜬 ‘아프리카’ 방송이 올림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폭염 피해 경기 본다”=수원시 장안구에 사는 주부 이후자(47)씨는 남편이 출근하면 바로 집 근처 찜질방으로 향한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찜질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며 경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요즘 찜질방은 올림픽 때문에 오전시간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경민(22)씨는 10일 한국-이탈리아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청계광장’ 대신 신촌의 호프집을 선택했다. 폭염으로 더운 광장보다 시원한 음식점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청계광장도 좋지만 시원한 호프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은화·김진경·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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