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돈이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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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재벌회사의 창고 사과상자안에 그득한 수십억원을 헤아린다는 현금뭉치를 보며 나는 두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하나는 지난달 말재판 계류상태에서 세상을 뜬 가네마루 신(金丸信)이었고,또 하나는 남태평양 한 섬의 「돌 화폐」이야기다.
가네마루가 떠오른 것은 정치권력을 이용해 엄청난 개인재산을 챙기고 감춘 그 수준의 저열함 때문이다.지난 93년 도쿄(東京)지검 특수부가 탈세혐의로 구속된 가네마루의 사무실과 집안에서우리 돈으로 환산해 수백억원의 채권과 현금,그리 고 수백㎏의 금괴를 찾아냈을 때 일본열도는 분노로 떨었다.
가네마루가 누군가.자타가 당시 집권 자민당의 「킹메이커」로 인정할 만큼 일본 정치판을 대표해온 인물이 아니었나 말이다.그런 인물이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돈을 빼돌려서는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액면을 잘게 나눈 무기명 채권과 현금, 심지어 금괴로까지 숨겨놔? 정치자금에 관한한 대단히 너그러운 일본이지만 이러한 개인적 치부까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었다.이처럼 추잡한 정치판과 정치인으로부터 일본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은 당연하다.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신당결성에 사용하려고 했다』는 가네마루의 법정 변론도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돈이 돈을 부르고,힘이 힘을 가져온다」는 지론에 걸맞은 행위였는지는 몰라도 가네마루는 이로써 육체적 죽음 이전에 정치적.사회적으로 영원히 매장됐다.
대중가요는 시대를 반영하게 마련이다.「이봐 가네마루,당신은 등 뒤에서 더러운 돈을 긁어 모으고선… 무척 후회한다면서도 오늘은 몸이 안 좋다며 검찰 출두를 거부하고 있지… 새빨간 거짓말쟁이,추한 늙은이여」.당시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고 외신이 전했던 한 가요의 가사다.
불쾌한 느낌을 가중시킬 얘기를 오래 하면 정신건강에 좋을 게없다.그러니 밀튼 프리드먼의 『돈의 이야기』(원제 Money mischief)에 나오는 거의 1백년전 남태평양 캐롤라인군도의 야프(Yap)섬으로 돌아가 보자.
프리드먼이 이 책의 서두로 원용한 당시의 한 인류학자가 쓴 탐사기에 따르면 이 섬 사람들은 돌을 화폐로 사용했다.물론 그냥 돌덩어리는 아니고 6백여㎞ 떨어진 다른 섬에서 나는 석회석을 다듬어 만든,운반용 구멍이 뚫린 바퀴모양의 돌 이었다.「페이」란 이름의 이 돌 화폐의 지름은 30㎝에서 3백60㎝정도 됐다니까 다듬거나 운반하는데 상당한 공력을 들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돈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돌의 주인이 누구라는 표시를 할 필요가 없다는데 있었다.그저 그 돌이 자기 것이란 인정을 받기만 하면 그뿐이었다.야프섬 어느 마을에 누구나 큰 재산가로 인정하는 한 가족이 살았다.
아주 큰 페이의 소유 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페이를 본 사람도,만진 사람도 없었다.그 집안의 조상 한 사람이 아주 크고 좋은 돌을 얻어 뗏목에 싣고 오던 중 심한 폭풍우를 만나 배 뒤에 매달린 줄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바다밑으로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이 다.
섬으로 돌아온 뒤 일행은 그 돌이 아주 크고 값지며 그 돌이바다에 빠진 것은 주인의 잘못이 아니란 점을 증언했다.그들은 돌을 바다에 빠뜨린 하찮은(?)사고로 그 페이가 가치를 잃어버렸다고는 생각지 않았다.따라서 그는 자신의 벽에 세워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 페이의 소유자고 큰 부자라는 얘기다.
사과상자에 쌓아 놓은 돈,마룻바닥에 숨겨놓은 금괴,그리고 바다에 가라앉은 페이 사이에 무슨 논리적 가닥이 닿느냐고 묻지는말아주시기 바란다.그저 『돈이 뭐길래』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고,또 사람의 연상(聯想)작용이란 컴퓨터의 논리적 작업과 달리 원래 시공(時空)을 넘어 자유분방하게 이뤄지는 것이니까.
朴泰昱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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