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축구협 기술위 왜 이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2002 한.일 월드컵을 1년반 앞둔 2000년 12월. 이용수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현 세종대 교수)이 가삼현 협회 국제국장을 불렀다. 이위원장은 외국인 감독 다섯명의 명단을 건네주며 "1번부터 차례로 접촉하라"고 주문했다. 명단은 ①에메 자케 ②거스 히딩크 ③조 본프레레 ④밀로슬라프 블라제오비치 ⑤보라 밀루티노비치.

"다섯명을 적긴 했지만 1, 2번을 데려오지 못하면 다시 기술위원회를 열겠다"는 이위원장에게 가국장은 "다리를 붙들어 매서라도 데려올 테니 걱정마라"며 떠났다. 그래서 데려온 사람이 히딩크였다. 월드컵 4강의 신화는 이렇게 출발했다.

2003년 1월. 기술위는 임기가 끝난 히딩크의 후임으로 움베르투 코엘류 전 포르투갈 감독을 선임했다. 김진국 기술위원장에게 어떤 과정을 거쳐 뽑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국제국에서 코엘류와 브뤼노 메추를 최종후보로 추천했고, 기술위에서 코엘류를 뽑았다."

2004년 4월. 그 코엘류 감독은 끝내 임기를 못 채우고 떠났다. 김위원장은 "코엘류 후임도 역시 외국인 감독으로 뽑겠다. 감독 후보 물색은 국제국이 맡는다"고 발표했다. 또 그에게 물었다. "왜 그 일을 국제국에서 하나?" 김위원장이 대답했다. "외국인 감독은 그 쪽에서 더 잘 안다." 대한축구협회 정관에는 기술위와 국제국의 업무가 명시돼 있다. 기술위는 '국가대표급 지도자의 선발에 대한 추천 및 자문'을, 국제국은 사무처 업무 중 '국제업무'를 각각 맡는다. 국제국의 국제업무에는 국가대표급 지도자, 즉 대표팀 감독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 2001년 정확히 나뉘어 있던 기술위와 국제국의 업무가 언제부턴가 헝클어진 것이다. 우연찮게 그러면서 '막강 한국축구'의 위세도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축구는 지난 2년간 성공한 감독과 실패한 감독을 모두 겪었다. 그리고 성공한 쪽은 기술위가 제 역할을 했을 때 나왔다. 비록 무보수 봉사직이지만 기술위는 한국축구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그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자신들의 명예만 잃는 게 아니다.

장혜수 스포츠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