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구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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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찬호(1959~ ) '구두' 부분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중략)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후략)



모든 발은 마음의 화신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쪽을 발은 함께 바라본다. 마음이 여유로우면 발 또한 여유롭고 마음이 들끓으면 불쌍한 발 또한 들끓는다. 한평생 그러하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편에서 당신 또한 당신의 늙고 고집 센 발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우련 일지 않는가.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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