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언론 개혁의 대원칙 "시장의 손에 맡겨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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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신문협회가 개최한 '신문의 날' 기념 포스터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은 '신문 나무'였다. "신문은 오랜 역사를 통해 사회 버팀목으로 성장해 왔으며,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안식처가 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러나 모든 '신문 나무'가 '회춘'하지는 않는다. 뿌리가 얕고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외부의 힘에 의해 뽑힐 수 있다.

시대 격변기엔 선진 외국에서도 신문 산업의 현황과 역할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했다. 미국.독일.영국이 대표적인 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쟁이 치열한 나머지 황색 저널리즘과 폭로 저널리즘이 판을 치게 된다. 신문 가판대를 둘러싸고 시카고에서는 신문사들이 마피아를 고용해 서로 총격을 가할 정도였다. 이는 신문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언론의 갈길을 제시하는 '고전'이 탄생했다. '허친스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다. 당시 시카고대 총장인 허친스를 중심으로 13명의 사회 저명 인사가 참여해 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들은 2년 동안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연구해 언론의 '사회책임이론'의 토대를 제공했다. 편파성.선정성을 배격하고 언론 스스로 끊임없는 자율 개혁을 추구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정치.광고 등 외부의 어떤 조건으로부터도 언론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에서도 좌파 지식인과 학생 운동이 온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1968년, 독일 연방의회의 요청으로 '권터위원회'가 구성된다. 독일 신문과 방송 산업 전반에 대해 조사.연구하기 위해서다.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정부가 언론 시장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위원회는 신문 산업의 진흥을 위해 조세 감면, 지원 정책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정부는 이 같은 여러 제안을 현실적으로 검토해 적법한 범위 내에서 지원 정책을 폈다.

영국의 신문시장 경쟁은 특히 치열하다. 전세계에서 파파라치들이 가장 극성을 부릴 정도다. 이 같은 과당 경쟁으로 인한 언론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됐다. 제1.2.3차 왕립언론위원회 운영이 그것이다. 이 위원회들이 시종일관 제시한 언론 정책의 기본 원칙은 "시장에 일임하라"는 것이었다.

이들 국가에선 미디어 기업들이 다각경영과 복합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신문과 방송의 겸영이 금지돼 있지 않다. 따라서 일부 미디어 기업의 시장 독과점으로 나타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특정 정파를 위한 이데올로기 차원은 아니었다. 다양성을 확보하고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자는 게 목표였다.

총선 이후 언론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선진 외국 같이 정파적 색깔을 뛰어넘는 논의 방식을 거칠 때에만 최소한의 동의라도 얻을 수 있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제3자가 이데올로기적 목표로 이것을 추진한다면 이는 개혁이 아니라 언론 통제의 도구로 오용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신문의 성공과 실패는 독자와 시장의 손에 달렸다. 이것이 민주주의 기본 원리이자 선진 외국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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