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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테이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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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라운드 테이블’은 둥근 탁자 혹은 원탁회의를 뜻한다. 영국 아서왕 전설에서 유래했다. 카멜리아드왕 레오데그란스가 딸 기니비아와 아서가 결혼할 때 100명의 기사와 함께 선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주변에 150명의 기사가 둘러앉을 수 있는데 그 자리에 상하 구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참석자가 우열 없이 자유 토론하는 ‘라운드 테이블(콘퍼런스)’은 이후 정치·경제 용어로 두루 쓰였다. 이해가 상충되는 개인이나 국가가 원탁에 둘러앉아 협의하며 타협점을 찾는 회의라는 뜻이다. 현대 정치에서는 1886년 아일랜드 자치문제로 자유당이 분열되자 급진파 J 체임벌린의 제청으로 그 이듬해 열린 원탁회의가 최초로 꼽힌다.

이어 1930년대 인도 자치를 두고 세 차례 열린 영국·인도 원탁회의, 47년 제2차 세계대전 뒤 인도로부터 파키스탄의 분리를 결정한 인도·파키스탄 원탁회의 등이 대표적이다.

국제통상과 경제에서는 다자간 협상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딜론라운드’ ‘우루과이라운드’ ‘뉴라운드’ 등이 대표적이다. 가능한 모든 분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주제를 하나씩 논의하는 양국간 협상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학술과 회의 용어로도 자리 잡은 라운드 테이블은 대화와 협조 정신을 표방한다. 참가자 간 의견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타협적 성격이 강하다. 갈등적 상황에서 수평적 자유 토론을 거쳐 합의·중재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최근 초대형 정치이슈들이 속속 터지면서 TV토론 프로그램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시청률도 여느 때를 웃돈다. 전문가 패널은 물론이고 시민 논객들까지 정교한 논리를 펼친다. 시청의 재미도 남다르다. 각기 지지하는 입장의 토론과 패널들이 날 선 공격을 할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우리 편 잘한다’는 응원의 심리까지 깃든 시청이다. 어쩐지 해법과 대안 도출이 아니라 정쟁의 확인, 힘겨루기 장이 돼버린 느낌이다.

강명구 서울대 교수는 사회적 갈등 조정을 위해 TV토론의 변화를 촉구한다. “편을 갈라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춘 후 내 편, 네 편이 쟁투하는 식의 토론이 아니라 대안을 도출해가는 라운드 테이블형으로 토론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디 토론프로뿐이겠는가. ‘라운드 테이블’은 극단적인 갈등과 세력이 충돌하는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한 시대정신일지도 모르겠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