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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정책, 일관성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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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과학기술부가 해체되어 ‘교육과학기술부’로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교육의 현안에 밀려 과학기술이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걱정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좋은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은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왜 분해하느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나마 과학기술인이 장관으로 임명돼 다행으로 여기다가 이번에 그마저 옷을 벗고 떠났다. 이제 내각의 각료 가운데 단 한 명의 과학기술인도 없게 됐다. 그뿐 아니라 과학기술 출연연구소 기관장들이 일괄 사표를 낸 후 아직도 여러 기관의 책임자들이 공석 중이다. 한마디로 과학기술계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지금 우리는 세계적 에너지 문제에 봉착하고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이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과학기술이다. 여러 나라가 첨단기술을 이용한 신에너지 개발과 원자력의 확장, 재래에너지의 재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연구·투자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에너지 분야뿐만이 아니다.

이 마당에 우리의 과학기술이 우리 내부의 불안정한 환경과 여건 때문에 활력을 잃거나 주춤거리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은 장기계획하에 지속적 연구와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질 때 우수한 결과가 나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도중에 계획이 흔들리거나 동력을 잃게 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과학기술인들이 의욕을 잃거나 불안 속에 전전긍긍하게 되면 결과는 더욱 심각해진다. 과학기술인들이 안정적 여건에서 신이 나서 일하고 미래의 살 거리 창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핵융합로인 KSTAR이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인공태양’ ‘꿈의 에너지’라고 불리는 이 핵융합로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첨단 장치로 12년 동안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돼 지난해 9월 14일 완공식을 했다. 우리 과학기술의 우수한 역량과 참여 기업들의 헌신, 그리고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융합돼 자체적으로 이루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시험 가동 중에 있는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여러 보완점을 조정하고 최적의 조건을 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막상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이끌어 나갈 연구소장이 공석 중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헌신적으로 일해온 연구소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하필이면 이 중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임기도 아직 몇 달 남았는데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가?

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인재(人材)다. 수십 년 동안 경력과 실력을 쌓아온 전문가는 참으로 귀하다. 아니 귀하게 대우해야 한다. 현재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세계 36개국의 과학기술인들이 공동으로 ITER이라는 대규모 핵융합로를 건설 중이다. 20~30년이 걸리는 역사적 장기사업으로 우리나라도 국가의 명예를 걸고 깊이 참여하고 있다. 국제경영개발원(IMD)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과학경쟁력은 세계 5~6위, 기술경쟁력은 7~12위로 상위권에 속한다. 우리 과학기술인들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이 우수한 우리 과학기술 인재들의 창의적 능력을 국가를 위해, 미래를 향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그 여건과 풍토를 만들어 주고 사기를 높여 주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안정된 행정체제와 일관성 있는 정책에 따라 중장기 비전을 갖고 활기차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인들이 홀대받는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과학기술은 곧 우리의 희망이요, 과학기술인은 우리의 자랑이라는 이해와 인식이 널리 뿌리내려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푸른 꿈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참으로 중요하다.

김우식 KAIST 초빙 특훈교수·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