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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장애인 정책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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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장애인을 어떻게 선별하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집중시킬 것인가다. 일상 생활에 지장없는 사람, 상당한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장애인으로 등록해 각종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면 장애인 정책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전주에서 160여명이 허위 장애진단서를 받아 각종 혜택을 가로챈 일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한다.

자동차 특소세 면제,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항공료 할인 및 지하철 요금 면제, 전화요금 할인, 각종 의료 혜택, 의무 고용, 주차장 우선사용 등 수많은 혜택이 장애인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진다. 한국은 '장애인 천국'이란 말이 유사 장애인들로부터 나올 정도다. 장애인에 대한 혜택은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돼야 정책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대중의 신뢰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손쉽게 장애인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이유는 그 부담을 정부가 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관련된 정책은 장애인 고용, 장애인 교육, 장애인 복지, 장애인 편의시설, 장애인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따라서 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전담하게 될 경우 그 비용은 천문학적 예산을 필요로 하게 된다. 장애인 비용 분담에 관해 정부가 민간부문에 강제력을 행사하거나 협조를 요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정부 내부에서 자기 분야의 장애인 정책에만 골몰한 나머지, 또 정치적 요구에 의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한 나머지 장애인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장애인 혜택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 현상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즉 노동부는 기업에 대한 의무고용제와 고용부담금 징수에 매달리고,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혜택 늘리기를 업적으로 생각하며, 교육부는 대학 정원 외 장애인 학생 모집 허용을 교육 지원으로 생색내고, 건교부는 장애인 시설 설치 규정과 이행 강제로 장애인 서비스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책 시행에 따른 비용의 대부분은 민간에 전가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 정책 기조가 민간부문에 부담 떠넘기기식으로 설정된다면 이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국무총리실에서 장애인 정책의 기조와 노선을 재정립하고 그에 따른 부서별 정책 조정과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장애인을 특별관리대상 장애인과 일반 장애인으로 분리해 장애 정도가 심한 특별관리대상 장애인에게 지원과 혜택을 집중시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 장애인의 경우에는 경제적 형편을 파악해 지원과 혜택의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직업이 있고 일상생활에 지장없는 일반 장애인에게는 이동편의 제공으로도 족하다.

또 현재와 같은 협의의 '장애인'범주를 토대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2% 이상 충족하라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다. 사실 일상 노동이 어려운 장애인을 의무고용 이행이라는 명분으로 작업장으로 내몰거나, 마땅한 장애인 인력이 없어 고용하지 못하는 기업에 부담금을 과다하게 징수해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의무고용률의 인상과 강제, 선심성 복지 혜택 증가, 부담 떠넘기기 같은 일이 아니라 장애인의 재활과 사회적 통합을 위한 차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컨대 장애인 교육시설, 장애인 편의시설, 장애인 통신수단, 장애인 이동수단, 장애인 능력 계발 같은 분야에 집중 투자해 진짜 장애인이 효과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직접적 소득보장 효과가 있는 정책 운용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전영평 대구대학교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