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수도 이전, 다시 생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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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총선기간 수도이전 정책을 반대하는 학계의 모든 전문가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자칫 수도이전 문제가 지난 대선 때처럼 또 한번 지역정치의 낡은 구도에 편승해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위험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정당과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수도이전 문제를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조짐은 이미 지난해 말 16대 국회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에 관한 특별법이 한나라당.민주당.열린우리당.자민련의 공조하에 통과될 때부터 감지됐다. 국가의 일대 중대사가 국회에서조차 아무런 공청회나 심지어는 찬반 토론 없이, 그것도 무기명이 아닌 기명투표 방식으로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은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너나할것없이 모두 충청권의 표를 의식했던 결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아무튼 수도이전 문제는 탄핵 정국에 묻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총선의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수도이전 문제를 탄핵 문제와 연관지어 비교해 보면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발견된다. 대통령 탄핵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있어서는 국회보다 국민의 의사가 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는 논리가 앞섰다. 즉 아무리 국회가 탄핵을 결의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결코 국민적 합의로 볼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도이전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있어서만큼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특별법을 통과시켰으니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이는 분명 논리적 모순이다.

물론 탄핵 문제와 수도이전 문제를 동일하게 다룰 수는 없겠지만 수도이전 역시 통일을 비롯해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따라서 정략적 차원에서 이뤄진 탄핵 문제에 대해 국민이 직접 심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논리가 타당성을 갖는다면, 마찬가지로 정치적 차원에서 고도의 선거전략으로 제기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수도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국민의 의사를 확인해 봐야 할 당위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총선기간 수도이전 문제가 전국적인 관심사항이 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적어도 충청권에서만큼은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 또 하나 발견된다.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수도이전이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충청권 표심의 저변에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수도이전 문제가 고작 당장의 대통령의 거취 문제에 따라 좌지우지될 만큼 취약한 기반을 갖고 출발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국민의 폭넓은 공감대에 기초한 정책이라면 대통령 거취에 상관없이, 나아가 4년 후, 9년 후 어차피 다가올 정권 변화에 구애받음 없이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다. 수도이전이라는 국가적 대사가 언제까지나 정치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불안한 눈치보기를 계속해야 하는가? 수도이전이 국가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적어도 향후 20년.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과제라면 앞으로 매번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정치권이 이 문제를 계속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제에 국민의 엄정한 판단을 받아야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수도이전 문제는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절묘한 약효를 발휘했다. 한 가지 공약으로 100% 이상의 효과를 본 셈이다. 때문에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는 수도이전 문제가 지역정치의 도구로 이용됐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이 문제는 솔직히 두번 재미를 본 것으로 마감해야 한다.

총선은 끝났다. 이제 공은 대통령과 새로운 집권 여당의 손으로 넘어갔으니 지금부터라도 진정 국민을 위한 상생의 정치를 위해서는 수도이전 문제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야당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의 어정쩡한 기회주의적 자세를 버리고 확실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도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