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17대 총선 결산 기획 시론

4. 한나라 갈 길은 '개혁적 보수'(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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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메시지는 부패정치.대결의 정치를 종식하고, 민생현안에 집중하는 생산적 정치를 복원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현명한 국민은 여당에 안정되게 국정을 운영할 과반수 의석을 주었고, 한나라당에는 거대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특히 탄핵 역풍으로 인해 궤멸의 위기에 처해 있던 한나라당이 120석 이상을 얻은 결과는 박근혜 대표의 바람, 노인폄하 발언, 영남의 지역주의 결집 등도 영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집권여당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견제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에 표를 준 유권자의 상당수는 한나라당의 부패와 오만함을 비판하면서도 거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고심 끝에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선거 결과에 안도하기보다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개혁에 착수하고, 건설적인 야당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우선 한나라당은 국민 앞에 약속한 신(新)한나라당을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 개혁에 나서야 한다. 지난 몇 달간 한나라당은 대규모 불법자금 비리가 밝혀지면서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수차례 국민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변화와 개혁을 공언해 왔으나, 실제로 변한 것은 많지 않았다. 다수의 국민에게 한나라당은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수구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개혁적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개혁적 보수는 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신념은 유지하되, 개혁을 거부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를 거부하고, 5.6공 권위주의 세력과의 결연한 단절을 통해 냉전수구 세력이 아닌 개혁적 보수의 새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성장과 효율성을 강조하더라도 분배 문제와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눈감지 않으며, 국가안보와 반공을 강조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고민하는 열린 태도를 보여야 한다.

둘째로 한나라당은 성숙한 여야관계를 구축하고 여당을 견제하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등장 이후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를 인정하고 거대야당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발목잡기에 치중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여야가 극한대립과 오기의 정치를 해 왔기 때문에 결국 탄핵 가결이라는 파국적 상황에 도달하게 됐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기대는 대결의 정치를 청산하고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정부.여당을 견제하면서도, 때로는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는 건설적인 견제세력으로 야당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특히 총선 과정에서 미뤄진 중대한 국정과제들과 민생현안들을 돌보는 일에는 정부.여당과의 협력을 아끼지 말고 적극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은 50대 이상에 치중된 지지기반을 넓히고 젊은 세대의 지지를 늘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에게 한나라당은 과거지향적이고,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낡은 세력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에 당의 개혁과 변신이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는 관건이다. 영남지역에 지지기반이 편중된 지역정당을 극복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이번 선거 막판 한나라당은 영남의 지역정서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고, 총선 결과도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참패하고 영남권에서 싹쓸이해 의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정서에 기대고 젊은 세대에게 외면 받는 당의 이미지와 지지기반으로는 재집권은 물론 미래정치의 주역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정치를 펼치라는 총선 민의에 화답하기 위해서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역할도 큰 몫을 차지한다.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변신을 통해 개혁적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찾고, 정부.여당과 국정운영을 협력하면서도 견제하는 건전한 야당의 역할을 찾을 수 있기를 국민은 고대한다.

李來榮 고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