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敗者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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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상이 바뀌었다. 선거가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성숙해졌다. 패배한 쪽의 이유나 변명은 끝이 없을 것이다. 탄핵만 없었어도, 촛불 때문에, 포퓰리즘 때문에, 방송 때문에….

그러나 그런 변명은 영원한 패자만을 만들 뿐이다. 누구 때문이 아니다. 탓을 하는 것은 국민을 어리석다고 보는 것이다. 아직 정신차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지한 결심이 모여 이 결과를 가져왔다고 믿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마음이다. 진 쪽이 흔쾌히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 아름다운 법이다. 패배를 솔직히 인정한 후에야 다음의 승리를 준비할 수 있다.

*** 경계 버리고 박수칠 수 있어야

진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제 박수를 보낼 마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왜 서로 싸웠는가. 왜 갈등했는가. 나라가 잘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더 좋은 나라, 더 잘 사는 나라, 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를 놓고 경쟁한 것이다. 국민은 선수의 교체를 원했다. 지금까지 보수가 주류고 진보가 이를 견제하던 사회 구성이, 이제부터는 진보가 주류고 보수가 견제하는 구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새 주류세력이 이 공동체를 위해 더 잘 해줄 것을 진심으로 바라야 한다. 새 선수들이 더 좋은 나라를 만든다면 마음껏 박수칠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불안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저 사람들이 정말 나라를 잘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경계심을 버려야 한다. 과거의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라에 놀란 사람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공산주의에 놀란 가슴 때문에 진보를 무조건 배척하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국민의 다수가 이를 표로써 보여주었다. 국민은 이제 바꾸어 보기를 원한 것이다. 그 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패배한 쪽은 이제 무대에서 물러나 무엇이 패배의 원인이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고 국민이 다시 부를 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나라 보수주의가 패배한 것은 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보세력은 꿈이 있었다. 그것이 평등이든, 민족 자주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역경을 견디며 살아 왔다. 전교조로부터 교육을 받은 어린 학생들, 그들이 대학에서는 운동권이 되고, 그 운동권들이 이제는 이 나라 정치세력의 주역이 된 것이다. 반면 보수는 꿈 대신 가진 것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저쪽 사람들은 위험하니 우리가 계속해야 한다는 논리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고인 물이 되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지향하는 꿈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장성한 자식을 억지로 투표장에 끌고가 부모가 찍는 사람을 찍으라고 달래고 윽박지른다고 해결이 안 된다. 그들에게 부모의 꿈을 알려주어야 했다. 우리의 꿈은 자유이고 민주주의다. 집단의 이름으로,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할 수 없는 자유가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의 꿈은 품위있고 교양있는 나라, 그런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 "못 배웠으면 어때"가 아니라 많이 배우고 훌륭한 사람이 존경받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보다 못 살더라도 평등한 나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면서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이 급진적으로 판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어야만 한다. 우리의 꿈은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정부가, 사회가 대신 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꿈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질 때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것이다.

*** 고난의 세월이 올 수도 있다

꿈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준다. 나는 우리 앞에 고난의 세월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나라가 어지러워지지 않기 바란다. 좌우의 공허한 싸움은 끝내고 나라가 잘살 수 있는 일에만 매달렸으면 좋겠다. 이런 일이 의회 안에서 진행되기를 바란다. 의회 밖에서 완장을 차고 초법적인 위세를 부리거나, 의회 안에서도 다수결의 이름 아래 위헌적 입법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고난의 시절이 올 수도 있다는 점에 대비해야 한다. 현실에 무조건 굴복하는 유약함이나 상대방을 좋게만 보려는 순진함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미리 떨며 타협하거나 굴복해서도 안 된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양보해서는 안 된다. 고난이 온다 해도 이루어야 할 꿈이 있다면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