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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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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5년 11월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호팀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중국 방문길에 오른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전용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시점이었다. 중국 경호팀은 부시를 영접하러 나온 리자오싱 외교부장이 탄 승용차를 계류장에 먼저 입장시키려 했다. 그러나 미국 경호팀은 공수해 온 방탄차 10대를 먼저 들여보내려 했다. 중국 경호원들이 제지하자 미국 경호팀은 그대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상대방을 들이받았다. 먼저 들어가서 경호에 적절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강경책이었다. 중국 관계자들은 이런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2004년 11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공식 만찬장에서도 경호 소동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을 따라 들어가려던 미국 경호원들이 이를 막는 칠레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직접 몸싸움에 끼어들어 경호원들을 구출(?), 만찬장에 대동하고 들어갔다. 미국 여론은 부시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에 호감을 표시했다지만, 다자 간 회담에서 정상들의 공식 행사에 경호원의 출입을 금지하는 외교관례는 분명히 어긴 것이다. 9·11 테러 이후 피격 공포와 안전추구 심리가 그만큼 민감해진 것으로 이해해줘야 할까.

미국 대통령 비밀경호실은 SS(Secret Service)라고 부른다. 한국 경호실 영문 약칭은 대통령을 뜻하는 P자를 앞에 붙인 PSS다. 하지만 이름을 본땄을 뿐 능력은 아니었다. 대표적 사례가 1983년 10월 아웅산 테러 사건이다. 경호실 사전점검팀은 미얀마의 아웅산 묘지 일대에 북한 측이 설치한 크레모어와 소이탄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호실이 명예를 회복한 것은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때였다. 이때 각국 정상 26명의 위치를 정확히 추적한다는 과제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해결했다. 국정원 ·경찰청 등 13개 기관이 동원된 복잡한 경호를 매끄럽게 마무리지어 우리의 경호 능력에 대한 국제 평가는 상당히 높아졌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한국에선 사상 최대의 경호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조직한 ‘부시 대통령 전담 경호대’와 세계 최고의 미국 경호실이 주축이고, 부시 방한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촛불집회 등에 대비한 수많은 경비 병력이 동원된다. 사실상의 고별 방문에 요란한 경호작전을 벌이는 것 자체가 한·미 관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는 듯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