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나 청와대 사람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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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장학로(張學魯) 비리사건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청와대경호과장이 검문활동을 하던 경찰관에게 권부의 위력을 내세워 행패를 부렸으니 지켜보기 민망스럽다.
지난달 20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김영목(金永木.36) 경호3과장의 볼썽사나운 행동은 『나 청와대 있는 사람인데…』라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정상검문을 벌이던 구승환(丘承煥.43)경장은 계급장까지 떼이는 수모를 당했다.그리고는 「과잉검문」을이유로 계고조치와 함께 인근파출소로 전보까지 됐다.이 과정에서「金과장측의 압력」이 있었다는 게 동료경찰들의 주장이다.丘경장에 대한 행패 뒤에도 분이 안 풀렸는지 金과장은 해당경찰서 교통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고 호텔에서 다시 만나 따졌다고 한다. 물론 金과장측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음주측정에 걸리지않을 만큼 술을 약간 했지만 조심하기 위해 대리운전을 시켰고 신분증까지 제시했는데 丘경장이 너무 고압적으로 대했다』고 주장했다. 丘경장이 자신에 대해 두 차례나 엄격한 검문을 벌이자 술에 취한 金과장으로서는 일부러 트집잡는게 아닌가 생각했을지도모른다. 그러나 金과장은 직책상 더욱 몸조심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공손히 검문에 응했다면 丘경장이 계속 트집을 잡았을까.
더구나 근무경찰에게 폭언.폭행함은 물론 다음날 丘경장의 윗선에 전화까지 건 행위는 아무래도 도가 지나쳤다.丘경장의 어깨에는 민중의 지팡이로 십년 가까이 봉사하며 따낸 잎사귀 3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축 처진 어깨만큼이나 무거 워 보였다.
「성역(聖域)은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있지만청와대간부들의 잇따른 탈선에서 「역시 성역은 성역」이라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안타깝다.
김기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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