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기쁨 <73>키안티 클라시코를 고르는 기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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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32면

빈티지별로 모아 놓은 ‘일 포지오’.

이탈리아에서 세계 소비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적포도주는 말할 것도 없이 키안티 클라시코다. 키안티의 어원은 ‘포도 과세서’라고 한다. 토스카나주의 피렌체나 시에나에 가면 레스토랑과 와인 숍에서 많은 종류의 키안티 클라시코를 만난다. 하지만 그중에서 좋은 와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좋은 키안티 클라시코의 기준은 무엇일까?
피렌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려가면 카스텔로 디 몬산토가 나온다. 키안티 지구 서부에 위치한 이곳은 와이너리라기보다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별장 같다.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룻밤 묵은 경험이 있는데 밤에 한 무리의 반딧불이와 마주쳤을 만큼 자연환경이 빼어나다.

몬산토는 1750년 피렌체의 부호 바로니 가문이 지은 오래된 대저택을 1961년 현재 오너의 부친인 알도 비안키가 구입했다. 62년 밀라노에서 섬유수공업으로 성공한 파브리치오 비안키가 사랑해 마지않던 와인 세계로 화려하게 전업한 비교적 역사가 짧은 와이너리다. 86년에는 바릭(보르도의 오크 통을 일컫는 말)을 1500통이나 저장할 수 있는 총길이 250m의 아름다운 지하 셀러를 6년 만에 완성했다. 역사는 짧지만 창업 당시인 60년대 와인부터 두루 갖춘 올드 빈티지 저장고도 압권이다.

몬산토의 주요 상품은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일 포지오’다. 통 숙성과 병 숙성을 합쳐 30개월이 지난 와인은 리제르바라고 부를 수 있다. 62년이 첫 빈티지다. 몬산토는 수많은 와이너리 중에서도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의 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 같은 크뤼(특정 포도원에서 생산된 고품질 와인을 일컫는 ‘순위’의 프랑스어) 개념을 키안티 지구에 최초로 도입한 회사다.

6월에 몬산토를 방문했을 때 오너의 딸이자 실질적으로 와이너리를 관리하고 있는 라우라 비안키는 친절하게도 버티컬 테이스팅 기회를 주었는데 일 포지오 77·82·97·99년산과 2003·2004년산 등 근사한 와인들로 장관을 이뤘다.

일 포지오는 포도 농사가 잘된 해에만 만들기 때문에 모든 빈티지가 근사하지만 우선 그 잠재력에 놀랐다. 77년산 색조는 갈색으로 변해 있고 숙성된 향기가 났지만 30년이 지난 키안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싱싱한 과일 맛이 밑에 깔려 있었다.
특히 2004년산이 인상적이었다. 국제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그토록 진한 색조가 나오다니! 블랙베리, 플럼, 잘 익은 사과 등의 매혹적인 향기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맛은 벨벳을 연상시키는 매끄럽고 우아한 풀 보디.

산지오베제 품종 특유의 희미하게 쓴 뒷맛도 근사해 나도 모르게 한 잔 더 마시고 싶어 손을 뻗었다. 90년대부터 2000년까지의 것보다 맛의 구성과 밀도가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뛰어난 잠재력은 77년산과 82년산으로 확인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장래가 기대된다. 로버트 파커는 일 포지오 2004년산에 94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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